한국 고대사의 고질적 문제점의 뿌리를 찾아보면 대부분 일제 식민 지배의 문제점에 와 닿는다. 그러나 다른 부분들은 대한민국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일제 잔재가 상당부분 희석되었지만 지끔까지 살펴보았듯이 역사학은 거꾸로 강화되어 왔다. 그 뿌리는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이 친일파를 청산하기는커녕 이들을 중용한 데에 있다.
사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 때는 독립운동경력이 죄였다.해방 후 이와 같이 독립운동가 집안 출신들은 항상 불이익을 당했다.
독립운동가 후손중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 선조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꺼렸다. 이유는 독립운동한 선조에 대해 아는 것 자체가 출세에 보탬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차라리 알리지 않아서 자기가 살 길를 찾는 자기보호의 본능이었던 것이다.
식민사학 해체 운동국민본부 집행위원장 김병기 박사는 김승학 선생의 증손자이다.
김승학은 망국후 평생을 무장항일투쟁과 역사학을 연구했다.
일제가 가장 무서웠던 것은 바로 한민족의 제대로 된 역사를 아는 것이었다.
김승학은 일제의 혹독한 고문속에서도 독립운동 사료들을 감추어 두었다. 그는 5년 감옥생활을 마치고 석방된 후 만주로 다시 망명해 일제가 망하는 것을 목격 했다. 그러나 일제는 패망했지만 정권을 잡은 것은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친일파였다.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성공한 자들의 자화상이다. 도덕성의 심각한 부패의 근원은 여기에 있다. 성공만 하면 도덕적이라는 이런 잘못된 인사들이 국망의 위기에도 나라보다는 개인의 성공을 위해 친일을 했던 인물들이 광복 후 대한민국의 보수기득권층이 된 것이다.그래서 한국은 진정한 보수도 없고 진보도 없는 국가이다. 진정한 보수는 국가보존과 역사혼을 지키기 위해 헌신을 한사람들이 보수건만 한국은 친일매국 사대주의자들이 보수가 된 것이다.
김승학은 이승만 정권이4.19혁명으로 무너지자 목숨걸고 지켜온 독립운동사료와 수기를 모아 『한국 독립사』를 편찬했다. 그는 서평에 이렇게 기록을 했다.
우리나라는 반세기 동안 국파민천(나라는 깨지고 백성은 천민)의 뼈저린 수난 중 광복되어 건국이래 이국가 백년대계의 원칙을 소홀히 한 것을 고사하고 도리어 일제의 주구로 독립운동가를 박해하던 민족 반역자를 중요하는 우거를 범한 것은....전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시정중 가장 큰 과오이니 후일 지하에 돌아가 수많은 선배와 동지들을 대할까보냐.
독립운동가 김승학의 이글은 이승만정권진영과 정확히 반대편에 서있었음을 말해준다.
대개 이런 헌샹은 모든 분야에서 진행이 되었다. 역사계,종교계,학계 등등 광범위하였다.
특히 역사학계는 이병도,신석호 같은 친일파가 학문권력을 완전히 장악해서 조선총독부 사관을 더욱더 공고히 하였다.이제 대한민국은 이런 비도덕적인 가치관을 정상화 시킬 것을 요구 하고 있다.식민사관비판에 대한 각계의 질타가 이런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친일파들은 청산되는 대신 권력을 잡았고 재산은 오히려 늘어났다.이는 한국사회 곳곳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대부분 사회의 부조리는 그뿌리가 이문제와 맞닿아 있다.
일본은 전범을 야수쿠니신사에 국보처럼 모시고 있는데 아직도 순국선열유족회의 국가지원금은 없어서 자비로 운영되고 있다. 일본이 한국이 망하는 근본적 이유를 보면서 비웃을 것이다. 중국과 일본이 엄청난 국비를 들여서 동북공정과 식민사관을 공고히 하고 신사참배를 단행하는 순간에도 한국은 식민사학자들과 사대주의자들이 대한역사광복의 숨통을 끊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 저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중일의 잘못된 역사침탈에 대응하라고 만든 동북아 역사재단은 오히려 단군역사를 신화로 만들고 한사군을 옹호하고 있는 글을 전세계에 배포하고 있으니 국민의 세금으로 연구비를 받아서 오히려 일제식민사관을 옹호하고 매국을 하며 국가와 국민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외교권을 빼앗긴 1905년11월 매서운 추위처럼 해방된지 70년이 돼가고 있지만 여전히 그날의 매서운 추위를 두려워하면서 순국선열 추모제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독립운동가가 살면 친일권력이 무너지지기에 한국사회는 친일파가 기득권을 쥐고 정의의 사도가 되어 생명을 바친 독립운동가를 오늘도 심판하고 있는 것이다.
고인돌은 고조선의 표지유물이다. 따라서 고인돌이 발견되는 지역은 고조선의 강역이란 뜻이다. 그러나 동북아 역사재단은 고조선을 ‘고인돌은 고조선의 묘제가 아니다’라고 견강부회한다. 조선총독부의 안목으로 우리역사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은 고인돌과 고조선을 분리하고 싶어 안달이다.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바라보는 고조선에 대한 관점은 조선총독부의 관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아니 오히려 동북공정을 수행하는 중국의 관변학자들의 주장보다 더욱 친중국적이고 더 반대한민국적이다. 역사침략은 반드시 영토침략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역사강역을 팔아먹는 것은 역사 주권을 팔아먹는 행위이다. 역사 주권을 팔아먹는 행위는 영토 주권을 팔아먹는 행위와 다름없다. 동북아 역사재단은 간도나 요동, 요서지방이 과거 조선의 영토였다는 문서나 지도가 나오면 광분해서 비난하기가 바쁘다. 자기들 논리를 관철시키기 위해 중국은 문헌 사료에서 기록하고 있는1차 사료마저도 잘못된 기록이다라고 잘라서 말한다. 이러한 행위는 한국사학계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이런행위는 북파간첩 천명보다도 오히려 대한민국의 존립에 만 배는 더 위험한 것이다.
간도가 조선땅이라는 것은 백두산 정계비에 간도는 조선 땅이라고 명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북아 역사재단측은“조선땅이었던 적이 없다”라고 주장한다.
동북아역사재단은 대한민국 학생들이 민족 주체적 관점의 역사 교육을 받는 것이 두렵기 그지없다. 그들은 식민 사학자보다도 한술 더 뜬다. 재야사학자들은 자신들이 땀흘려 번 돈으로 대한민국 역사 수호에 나서고 있는 반면 동북아 역사재단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세금을 가지고 매국에 나서는 것이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이다. 만약 대한민국 공무원들이 이 문제를 방치한다면 우리국민들은 ‘제2.3의 독립운동’에 나서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해야 할 것이다.
식민사학자들의 단재 신채호에 대한 거부감은 상상이상이다.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이 공개학술세미나에서 “단재 신채호는 네자로 말하면 정신병자이고, 세자로 말하면 또라이”라고 말한 사실은 학계에서 다 아는 사실이다. 국가 예산을 250억씩 매년마다 받아서 쓰는 사업단장의 말이다. 뤼순감옥에서 쓸쓸하게 옥사한 단재신채호를 두 번 죽이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병도는 “국사학의 태두이자 최조의 근대적 역사학자”로 떠받들어 졌다. 다시 일제가 이땅을 침략하는 상황이 재연된다면 이들이 어느 편에 설 것인지 너무나 명백한 고백인 것이다.
신채호가 살아나면 자신들은 설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식민사학자들은 ‘나는 식민사학자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글과 행동은 완전한 식민사학이다.
식민사학자들은 공개토론을 무조건 피하고 있다. 중국의 사서 문헌인 1차 사료에서는 한사군이 한반도내에 설치되었다는 기록이 전혀 없다. 그들은 1차 사료는 아예 무시하고 논쟁자체를 피하고 학계에서는 이미 정리가 끝난 문제라고 호도한다. 한때 국가권력을 이용해 억압할 당시에는 민족사학자들은 재야사학자, 민족주의자, 국수주의자로 매도하여 버렸다. 그러나 이제 관치로 민중을 억압하는 시대는 지났다. 정보화시대에는 수많은 정보가 일반대중까지 알도록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이제 식민사학이 설자리는 점점 비좁아 지는 것이다.
조선총독부사관과 독립운동가 사관사이의 최전선은 늘 한국 고대사였다. 한국고대사는 나라를 빼앗긴 100년 전부터 지금가지 늘 이 자리의 현대사였다.
동북아 역사재단은 한사군 한반도설을 극복했다고 하면서 논문을 보면 한반도 평양으로 비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일반사람들은 속기 마련이다. 겉으로는 애국자인척하고 속으로는 매국을 하는 이중성이 이제 백일하에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행위는 매국을 하면서 독립운동가로 평가 받고 싶은 것이다.
한국교원대교수 송00은 이병도계열 제3세대 학자이다. 그의 글을 볼 때마다 사고 구조가 참 희한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국사를 비하하기 위해 저토록 노력하는 학자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송00에게 실증주의는 자국사를 비하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구약성경의 이야기들은 수메르에서 차용된 것임은 성서고고학계에서 익히 밝혀진 바입니다. 유대인의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거죠.수메르인의 이야기가 차용된 것이죠. 그러나 그 이야기를 신화로 매도하지는 않습니다. 헌데도 한민족고대사는 신화가 되어야만 합니다. 고조선1호박사라는 자부심이 대단한 서울대 역사학과 박사출신인 한국교원대 송00교수는 고조선 강역축소와 고조선사 비하에 학문인생을 걸다보니 고조선 깍아내리기가 곧 학문이 되었습니다. 송00은 고조선은 모두 토착 족장들이 다스리던 미개한 사회였는데, 위만조선과 한사군의 선진철기문물을 받아들여 고대국가의 기틀이 형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조선총독부의 한국사 정체론의 반복인 셈입니다. 한국 민족은 자발적인 역사,사회 발전 능력이 없으므로 외국의 식민지배를 받아야만 발전할 수 있다는 논리죠. 그러니 고대 한나라의 고조선 지배나 근대 일본의 한국지배 미군정의 지배는 축복이었다는 논리로 이어집니다. 즉 미개한 고조선이 중국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여서 발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송00은 고조선 표지유물중인 비파형동검조차 고조선 유물이 아니나 연.진.한의 것이라고 단정을 하지만 연,진,한의 유물이라는 근거가 하나도 없다.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한국교원대교수입니다. 국민세금을 받아서 한국의 미래 교사들에게 고조선 역사를 비하하고 자국역사에 테러를 가하며 봉급을 받는다. 동북아 역사재단은 이런 학자들의 안마당인 것입니다. 고조선은 압록강을 넘어 만주에서 건국된 적이 없고 고조선의 중심지는 한반도 서북부내로 축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식민사학 그대로인 것이다. 즉 고조선을 단군이 4347년전에 건국한 것을 인정하는듯하지만 실상은 서기전4~3세기경에야 한반도 서북지역에서 고조선이란 국가가 탄생했다는 것입니다.결국, 일제식민사관인 위만조선과 한사군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것이죠. 조선총독부는 한사군의 위치를 한반도의 북부라고 확정했죠. 그러나 이제는 이 식민사학과 맞서는 축이 형성이 되었습니다. 현재 식민사학은 수세에 몰려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식민사학자들의 주장이 1차 사료에 아무런 기록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한서』「지리지」 요동군 험독현의 주석을 보면 ‘응소’에 ‘조선왕 위만의 도읍이다. 물이 험한데의지하므로 험독 險瀆이라 불렀다’고 했다. ‘신찬’은 왕험성은 낙랑군 패수 동쪽에 있다,고 했다.
낙랑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기록은 더욱더 없습니다. 왕험성인 평양이 패수(대동강)동쪽이라고 비정을 하는 식민사학들 논리대로면 대동강 북쪽에 평양이 있는데 한서지리지의 기록은 거짓이란 말인가요? 역사서든 고전이든 자기 멋대로 해석을 하고 아무런 근거도 없이 고집을 부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국 고대의 역사지리서인 『수경水經』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패수는 낙랑군 누방현에서 나와서 동남쪽으로 임패현을 지나 동쪽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대동강을 패수라면 대동강은 서쪽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데 중국사서 근거는 완전 무시하고 “ 대동강이 패수고 고조선 수도는 평양이다.” 라는 것만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후한서 광무제본기』에는 “낙랑군은 옛 조선국이다. 遼東(요동)에 있다”라고 말했고,『후한서 최인열전』에도 낙랑은 요동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낙랑군이 한반도가 아니라 요동이라고 반복해서 기록하고 있는 것이죠.
낙랑이 한반도내에 있었다는 식민사학을 고수하는 것은 고조선을 반도내로 축소하고자하는 조선총독부의 역사왜곡내용을 그대로 고수하는 것입니다.그러면서 언론에는 영토가 넓고 대국이라야만 식민사학을 극복한 것이 아니다.그는 또다른 식민사학이란 궤변으로 자기주장을 합리화합니다.민족사학에서는 있는 사실을 사서에 의거해 주장하는데 한사군 한반도설을 부정하면 넓은 영토 주장하는 식민사학 아류라고 적반하장을 합니다. 고려 중기이후 중화사대 유학자들은 중국에 의존해 살아남기 위해서 기자가 평양에 와서 조선을 건국했다는 ‘기자동래설’만들고 평양을 기자의 도읍지라 불렀었다. 그러나 기자와 그 후손들에 대한 기록인 『사기』「송미자세가」
주석에서는 “梁國 蒙懸에 기자묘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서진시대의 양국은 하남성(허난성) 商丘(상추시) 인근의 멍현이다. 상구는 상나라 언덕이란 뜻이니 은나라 사람 기자의 무덤자리라는 기록이 명확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기자조선설도 허구인 것입니다.
‘한사군 한반도설을 지지하는 1차 사료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동안 식민사학자들은 한사군이 요동에 있었다는 1차 사료들은 절대 인용을 하지 않고, 한사군 한반도설은 이미 학계에서 정리된 문제라고 밀어 붙였습니다.다음은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정부지원금 50억을 받아서 만든 지도인데 하나는 후한말지도고.또하나는 위촉오 시절 위나라 지도입니다.둘다 한.위가 한강이북을 점령했지요.이미 이당시 고구려가 떡 버티고 있는데 국경선도 한사군 한반도설을 고수하기 위해 세로로 산맥을 몇개씩 잘랐습니다.물론 고구려는 고대국가 중앙집권 제도 정비가 안된것으로 상정한거죠.고구려 초기 역사는 그냥 중국 변방 찌질이 국가정도....국경선이 산맥을 세로로 몇개씩 자르는 게 고대사회에 가능합니까.한마디로 국민세금으로 매국하는 논문과 역사책과 지도를 그리는 겁니다.이번에 부적격 판정받았죠.속좀 쓰리겠습니다.책임자 문책해야합니다.그러면서 동북공정과 일제 식민사학에 대응한다는 군요.어이가 없습니ek.
기사출처 : 이덕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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