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의 생애

실경을 화폭에 담는 전통은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유행되었다. 그러나 정선처럼 대부분의 산수화의 주제가 자기 나라의 경치를 위주로 하였던 진경화가는 별로 없었다.

겸재 정선

정선(1676~1759)은 숙종2년에 태어났으며 출생지는 한양으로 추정한다. 일찌기 도화서의 화원이었지만 명백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또 주역에 밝아서 역점(易占)으로 출세하였다는 평판이 있다. 70대 후반에는 궁중의 미곡을 공급하는 종4품 첨정(僉正)이 된다. 주변의 간언에도 불구하고 영조는 정선을 각별히 아꼈다. 그 와중에도 정3품인 첨지중추부사로, 또 81세가 되던 1756년에는 종2품인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로 계속하여 예우했다. 팔순에 이르러 노인직 규정에 따라 승직을 하게 되었을 때도 언관이 왕에게 올린 간언을 보면 잡기로 출세하는 것을 못마땅히 여긴 흔적이 남아 있다. 3현의 현감을 지냈는데 60대 후반에 종5품인 경기 양천의 현령을 한 기록만 남아 있다. 광산 정씨 족보에 보면 50대 후반에 종6품인 하양 현감과 청하 현감으로 지냈다고 한다.

실경을 화폭에 담는 전통은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유행되었다. 그러나 정선처럼 대부분의 산수화의 주제가 자기 나라의 경치를 위주로 하였던 진경화가는 별로 없었다.


이런 점에서 정선은 당시의 전통적으로 개념적인 산수화를 그리든가 화본의 모방에 치우치던 조선 후기 화단에 새로운 풍토를 조성하였다. 그는 또한 당시에 유행하던 절파화법보다는 이미 중국에 뿌리가 깊이 박힌 오파(吳派)계의 남종문인화풍의 여러 준법을 완전히 통달하였다.


나아가서 중국이나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정선의 독특한 겸재필법을 발달시켰다. 구도면에서는 단순하고 대담하면서도 조화를 잃지 않는 배치법으로 우리나라의 명승고적의 특징을 화폭에 담아 예술적으로 승화 시킴으로서 한국회화사의 발전에 새로운 단계를 이루었다.


우리나라의 그림이란 한낱 중국의 언저리 같은 나무의 한 가지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정선은 영조때 그의 활동이 절정을 이루었다. 그의 시작으로 우리의 옛 그림은 새로운 시대에 돌입을 한다. 산수의 경우 눈앞에 있는 실경 속에 잠겨있는 특징을 시각대로 충실히 그리고 개성화하는 기법의 발전부터 시작해야 될 것이다.

정선의 대표작으로 76세때 신미(辛未)년 연기가 있는 "인왕제색"이다. 만년에 그린 이 작품은 진경의 한 특징을 대표하고 있다. 먼저 그 극단의 양감 혹은 괴량감이다.


그리고 이러한 양감을 두드러지게 하기 위하여 암석, 암벽을 그리는 일종의 적묵의 묘법을 창안한다. 이것은 농묵의 거친 붓으로 여러번 덧칠해서 만드는데 다만 세로의 한 방향으로 필세를 가하여 양감을 더할 뿐 아니라 음영도 나타낸다. 이러한 묵색을 기조로 하고 나머지의 암면도 덧칠로 처리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오른쪽 아래의 수림도 주봉과 같이 적묵으로 강조한다. 요컨데 전체 화면을 중묵으로 지배하되 간간이 그리고 왼쪽 아래로 운무와 산능을 희게 남겼으므로 묵백의 대조는 더 한층 격렬하여진다. 말하자면 이 경우 정선은 실경의 한 특색을 용감하게 뽑아서 그림화하여 과장을 하였다. 중국 산수를 심산유곡 평원운산으로 정형화한데 반하여 정선은 우리 산천의 한 모습을 암산암벽과 같은 검고 거센 질감과 또 나무 없는 황량함을 흰 흙색과 미점(米點)으로 처리하였는데 이러한 시감의 강조는 결국 필세가 보여주는 중적과 흑백의 대조에서 화면 구성의 핵심을 구하게 된다.

이렇듯 정선의 진경산수의 특색과 그 기조는 먼저 묵법과 필법의 새 기법 위에 나타난다. 산과 나무의 미점등은 이런 특색을 보완하여 주는 것에 불과하다.
진경의 형성은 수없이 볼 수 있는 방방곡곡의 무수한 사생에서 터득한 정선만이 보는 정식화라고 부른다. 단지 실경을 많이 그리고 잘 그려서 위대한 것이 아니라 실경의 시감을 새로운 기법을 통하여 정형화하고 화법화 하였기 때문에 유명하다.

정선의 출현으로 조선 후기의 화단에 새로운 전환기를 초래하였다. 정선은 전통을 중시하는 중국의 여러 화풍을 익혀 자신의 독창적인 화법을 개척하였으며 그림의 새로운 소재를 찾아 전국 명승고적을 두루 여행하였다. 특히 뛰어난 경관을 화폭에 옮길 때 그 경치의 특색을 살려 창의적인 구도와 특징 있는 필치로 예술성 높은 작품을 창작함으로 조선화단에 진경산수라는 새로운 전통을 확립시켰다. 지금까지 200여점의 작품이 전해지는데 주로 50대 이후의 것이다. 특이한 것은 기년(記年)이 있는 것이 매우 드물다.


겸재정선의 "인왕제색도" 국보 제216호 → 국립중앙박물관 삼성기증문화재 특별전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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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