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주 대장의 뒤늦은 전역사

박찬주 대장의 뒤늦은 전역사

(후배장교 및 장성들에게 전하는 네가지 당부)

  저는 오늘 뒤늦은 전역인사와 함께 군문을 떠나려고 합니다.

    2017년 8월9일 제가 서울에 업무차 올라와 있는 동안, 저도 모르는 사

   이에 후임사령관이 취임하였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그 이후 다시    대구에 내려가질 못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함께 충격을 받았을참모 

   들과 부하전우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면서 뒤늦게나마 떠나는 인

   사를 드리려 합니다. 

  지난 40년간, 저에게는 지켜야 할 조국이 있고 생사를 함께 할 전우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늘 힘의 원천이자 행복의 근원이었습니다. 전차(戰車)의 굉음을 울리며 지축(地軸)을 흔들면서 전우들과 함께 불렀던 기갑영웅의 노래가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습니다. “폭풍우 치던지, 눈이 내리던지, 태양이 우릴 보고 웃던지… 매서운 바람을 뚫고, 맹렬히 돌진하여 나가는… 우리는 용맹의 상징 기갑선봉대” 

이 순간 저는 지난 군생활의 추억에 젖어 감회를 전달하기 보다는 앞으로 우리 軍을 이끌어갈 全軍의 후배 장교와 장성 여러분께 몇가지 당부의 말씀을 전하는 것으로 전역인사를 대신하려 합니다.

첫째,

후배장교 및 장성 여러분들은 軍의 철저한 정치적 중립을 지켜가야 합니다.

 

민주국가에서 軍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도전요소는 두가지인데, 하나는 軍이 정치에 개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지도자들이 軍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정치지도자들은 때때로 국가이익보다는 정권의 이익을 위해서 인기영합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軍의 정치적 중립이란, 軍이 정치적 성향에 흔들리지 않고, 심지어는 설령 정치지도자들이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굳건하게 국가방위태세를 유지하여 국가의 생존과 독립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정권이 능력을 상실하면 다른 정당에서 정권을 인수하면 되지만 우리 軍을 대신하여 나라를 지켜줄 존재는 없습니다. 軍이 비록 정치의 통제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軍이 정치보다 도덕적 우월감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정치가들이 평화를 외칠 때, 오히려 전쟁의 그림자가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는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평화를 만드는 것은 정치의 몫이지만 평화를 지키는 것은 군대의 몫입니다. 정치지도자들은 안 좋은 상황속에서도 유리한 상황을 기대하지만 군사지도자들은 유리한 상황속에서도 안 좋은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정치지도자들이 상대편의 선의를 믿더라도 군사지도자들은 선의나 설마를 믿지 말고 우리 스스로의 능력과 태세를 믿을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합니다. 힘이 뒷받침 되지 않은 평화는 진짜 평화가 아니며  전쟁을 각오하면 전쟁을 막을 수 있습니다.

셋째,

정치지도자 들에게 다양한 군사적 옵션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군대가 정치지도자들에게 제공할 수단에는 전쟁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양한 형태의 위협에 대비하여 다양한 옵션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하며, 성과중심에서 효과중심으로 사고를 전환하여,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옵션들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것이 전략심리전이든, 참수작전이든, 해상봉쇄이든, 군사적 옵션의 선택은 정치지도자의 몫이지만 그것의 실행을 보장하는 것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끝으로 군대의 매력을 증진시켜 주기 바랍니다.

군대의 매력은 편한군대에 있지 않습니다. 강한군대만이 매력을 줄 수 있으며, 역시 군대는 다르다는 기대의 충족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가서 편하게 지내다 올 수 있는 군대가 아니라, 비록 힘들지만 도전해 보고 싶은 군대, 땀의 가치를 알고 승리의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군대이어야 합니다.

각 개인의 재능을 전투력으로 승화시키고, ONE FOR ALL, ALL FOR ONE,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헌신할 수 있는 군대가 매력을 줄 수 있는 군대입니다. 군대의 증진된 매력은 국민에게는 든든함을, 장병들에게는 자부심과 자신감을, 적에게는 두려움을, 동맹군에게는 신뢰감을 주게 될 것입니다.

후배장교 및 장성 여러분,

여러분들은 軍을 이끌어 가는 기둥입니다. 서까래가 무너지면 교체하면 되지만 기둥이 무너지면 집을 허물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선배님들은 우리에게 소중한 정신적 유산을 물려주었습니다. 선배님들은 우리에게 온정주의와 감상주의, 기회주의와 인기영합주의를 멀리하고, 따듯한 가슴과 함께 차가운 피를 가진 군사지도자가 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 정신을 이어가야 합니다.

이제 저는 정들었던 군문을 떠나려고 합니다. 軍을 떠나는 순간 많은 분들은 조국이 위태로울 때 다시 군복을 입고 총을 들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저 역시 그러한 충정에 가득 차 있습니다만, 저는 그러지 않으려고 합니다. 후배 여러분들을 믿고 맡기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해서 입니다.

지난 軍 생활 동안 저를 이끌어 주신 많은 선배님들께 감사를 드리며, 생사고락을 함께한 부하 전우들에게 고마움의 마음을 전합니다. 또한 저를 아는 모든 분들의 성원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저에게 참군인의 감동적 매력을 끊임없이 보여주셨던 이상희 장군과 김관진 장군께 각별한 존경의 말씀을 드리며, 운명을 달리한 사랑하는 동기생, 백합 같은 인품과 샛별 같은 지성의 소유자 이재수 장군의 명복을 빕니다.

비록 105미리 예포의 포성과 늠름한 의장대의 사열은 없지만 지면으로나마 전역인사를 전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이심을 믿습니다.

2019년 4월 30일

예비역 육군대장 박 찬 주

 

편집부

<저작권자 ⓒ 한국역사문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