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초.. 이야기
이케가미(池上) 형제에 대해 잘 모르겠다는 신자가 많다는 것을 듣고 생각해보니 어회식 때 대성인님이 입멸하신 장소가 이케가미 형제 댁이라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이케가미 형제에 대해서 말하겠습니다.
이케가미는 성입니다. 성을 가졌다는 것은 무사로서 어느 정도 지위가 높다는 것을 알 수 있고 형은 무네나카(宗仲) 동생은 무네나가(宗長)라고 합니다. 형은 우에몬노타이후(右衛門大夫), 동생은 효에 노사간(兵衛志)이라는 관직을 가지고 있으니 무사 중에서도 높은 위치에 있었다고 알 수 있습니다.
이케가미 형제 댁은 현 도쿄에 이케가미 본문사로 되어 있습니다
제가 출가 후 고적지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는데, 이케가미 댁은 도쿄에 있으니 자주 갔었습니다. 이 본문사 주변에 세족지라는 못이 있습니다. 세족이라는 못의 이름대로 대성인님께서 이케가미 댁에 들어가기 전에 이 못에서 발을 씻으셔서 세족이라고 불리고 또 이케가미(池上)도 한문을 보면 못(池의) 위(上)에 있어서 이케가미라는 성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이케가미 댁에는 묘지가 있고 그 묘지에 역도산이라는 레슬러의 묘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북한 출신이고 그 제자가 레슬러 김일 입니다. 김일 선수는 부인이 묘선사 신자가 되어 저도 몇 번 만나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본문사에는 산문에서부터 계단이 있습니다. 폭이 5m정도 96단의 계단입니다 이 계단을 공양한 사람은 가토 키요마사(가등청정)입니다 이 사람은 여러분도 잘 알고 있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친족이고 실제 조선을 침략한 장군 중 한 명입니다
이 키요마사(가등청정)의 어머니가 일련종의 신자였습니다. 그리고 이 계단은 자경난사판(此経難事坂)' 이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차경난사 는 보탑품에 있는 말입니다 이 차경 난사에서 보탑품 끝까지 가 96자입니다. 그래서 이 계단을 올라갈 때 보탑에 있는,
此経難持차경 난지 (이 경은 가지기 어렵다)
若暫持者약잠지자 (만약 잠시 가지는 자는)
我即歓喜아즉환희 (난 바로 환희 한다)
諸仏亦然제불역연 (예불도 또 같다)... 라고 한 걸음 한 걸음씩 올라가 96단을 올라가면 고생 끝에 환희(성불)로 된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대사원을 건립하면 100단의 계단 위에 본당을 만들어서 자아게 의 여의선방편 위치광자고에서 득입무상도 속성취불신까지 100자 100단을 올라가서 본당에서 속성취불신의 말대로 성불을 약속해주신 본존님 앞에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상상해도 좋습니다. 이케가미 본문사는 이 계단을 올라가면 바로 앞에 본당이 있고 그 왼쪽에 빨간 둥근 탑이 있습니다. 여기가 1282년 10월 14일 입관 15일에 다비 (화장)한 곳입니다. 그 다비소 옆에 이케가미 본행사라고 있습니다 그 사원 이 니치렌 대성인님께서 입멸하신 곳입니다 이 본당에는 가운데 나무가 있습니다. 이 나무는 대성인께서 쇠약해 지고 상반신을 일으키기 힘드시 니 이 나무에 등을 기대고 일어서셨다 합니다 그 후 700년 동안 신자들이 와서 "여기에 대성인님께서 계셨다” 고 하며 이 나무를 만지니까 지금은 이 나무가 기름으로 까맣게 됐습니다. 그 본행사 경내에 우물이 있습니다. 이 우물은 대성인님께서 이 이케가미 댁에 들어오시고, 이케가미 형제가 글을 써 달라고 부탁했을 때 먹물을 만들 물은 첫물로 하고 싶어서 우물을 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본당 바로 앞에 벚꽃이 있습니다. 이 벚꽃이 입멸할 때 피었다는 벚꽃입니다. 이케가미는 대성인님의 입멸을 지금도 우리한테 알려주고, 보여주고 있다것은 이케가미 형제가 정말로 대성인님을 사모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케가미 형제에게 주신 ‘형제초’ 어서를 보면 아버지가 신심을 반대해서 만약 퇴전하지 않는다면 부자의 연을 끊고 절교하겠다고 압박을 줍니다. 아버지도 사에몬이라는 관위를 가지고 있는 가마쿠라 막부의 신하입니다. 그 당시 수도인 가마쿠라에는 하치만구' 라는 무사의 중심적인 신사가 있었습니다. 이 신사가 불에 타자 재건축하라고 이케가미 형제에게 막부에서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이케가미는 높은 신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막부가 믿는 아미타불을 비판하는 니체렌 대성인님을 미워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절교한다는 것은 무사집안에서 쫓겨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형제가 가지고 있는 관위도 없어지는 일입니다. 형제는 결혼해서 아내가 있었는데 아내는 이대로 가면 집안에서 쫓겨나고 거지와 같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한 마음에 “아버님 말을 듣고 아미타불을 신앙하고 일시로 법화경을 버리면 어떠냐?" 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동생인 무네나가는 신앙심이 약해서 아내의 설득에 흔들립니다. 형인 무네나카는 대성인님의 가르침대로 아미타를 믿지 않고 절교를 받아들였습니다. 수년 후 절교가 풀렸지만 다시 2번째 절교를 당합니다. 그래도 형은 대성인님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그뿐 아니라 아버지를 결국 절복해서 아버지도 대성인님의 신자가 되었습니다. 입신한 그 다음 해 아버지는 돌아가십니다. 만약 무네나카가 절교를 당해도 대성인님의 가르침을 믿고 절복을 하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영취산이 아닌 지옥에 떨어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대성인님은 "잘하셨습니다. 당신들 형제야 말로 진실한 효자다” 라고 하시며 '효자어서' 를 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케가미는 대성인님이 1278년에 병에 걸리셨을 때 된장을 공양합니다. 그 때 대성인님의 답은 "지금 당신이 보내준 된장을 먹고 이제 더욱 마음이 좋아집니다.” 라는 답장을 주십니다. 지금이라면 병원에 가서 약을 지어 먹고 영양이 많은 음식을 먹고 방을 따뜻하게 하는 등 편하게 병을 고치지만 대성인님은 된장을 먹고 좋아졌다고 하시니 시대가 달라져도 왠지 죄송한 마음이 생깁니다 또 어느 날, 이케가미는 미노부에 계시는 대성인님을 찾아뵙습니다. 그 때 4-5일 같이 수행을 하면서 대성인님께서 드시는 음식이 너무 보잘 것 없고 검소하셔서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이케가미는 앞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높은 지위에 있는 신하입니다. 매일 하녀들이 정성들 다하여 맛있는 음식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미노부산은 논밭을 만들지 못한 산악지대입니다. 또 만약 물건을 사야할 때도 꽤 많이 내려 가야하고 겨울엔 눈이 2m정도 쌓이는 곳이어서 걸어 다닐 수가 없습니다. 강도 꽁꽁 얼어붙고 사람이 다니지 못합니다. 그런 곳에 사시는 대성인님은 의, 식,주 모두 한 없이 부족한 상황 이었습다. 대성인님께서 소욕지족(작은 욕심으로 만족을 안다)을 실행하는 수행자이시니 불만을 말한 적이 없지만, 이케가미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미노부에서 돌아온 이케가미는 스승님보다 맛있는 것을 먹었다면 제자로서 실례다고 생각하여 그 후 이케가미는 음식을 검소하게 먹었다고 합니다.
이케가미 본문사는 대성인님 7회기에 니치지 등이 중심이 되어 입멸하실 때 모시던 본존님 . ‘임멸도의 본존, 을 모시고 입멸하실 때 울린 종 ’임멸시 종‘ 이 울립니다. 입멸지라서 어회식 날은 전국의 일련종의 신자가 모입니다. 물론 축제니까 신심을 하지 않은 일반사람들도 오지만 3일 동안에 약 200만 명이 모인다고 합니다. 역에서 사원까지 걸어서 20분 거리를 4시간 걸린다고도 합니다
우리 일련정종은 몇명 모일까요? 100명, 1,000명, 10,000명을 모아도 기뻐하면 안 되겠지요. 더욱 더 홍교, 전도에 정진해야 합니다. 니치렌 대성인님의 제자로서 부끄럽지 않는 신, 행, 학을 수행 합시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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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