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법연화경에 귀명례(歸命禮)하라.

부처님의 자비(慈悲)의 당체가 바로 법화경이다.
일체 중생의 성불의 직도(直道)를 설하심 보다 더한 자비가 또 별도로 있겠는가.
수량품의 자아게는
매자작시의(每自作是意) 이하령중생(以何令衆生)
득입무상혜(得入無上慧) 속성취불신(速成就佛身)
매양 스스로 생각하기를
중생으로 하여금
위없는 지혜를 얻게 하여
부처님 몸을 속히 이루게 할까 하노라.
부처님 세존께서는 이렇게 중생 성불을 매양 간절히 원하고 생각하신다는 게송이다.
이보다 더 큰 자비가 또 어디 있겠는가. 법화경의 진리가 곧 부처님의 자비요,
큰 지혜가 모두 담겨있는 것이다.
법화경은 모든 부처님의 인행과덕(因行果德)의 공덕과 모든 바라밀(波羅蜜)의
공덕이 함장되어 있도다.
법화경 한 게송 한 구절을 듣고 한 생각 따라 기뻐한 자는 성불함이 밝은 낮과 같음이라.
법사품에서 이르시기를 여래가 멸도한 뒤에 만약 어떤 사람이 묘법연화경의
한 게송이나 한 구절을 듣고 한 생각으로 따라 기뻐함에 이르는 자에게 내가
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수기를 주리라.
법이 거룩하기에 받아 지닌 자 또한 거룩함이라.
법화경은 모든 부처님의 스승이며 제불(諸佛)의 모태(母胎)이시다.
삼세 제불께서는 이 경으로 말미암아 십호(十號)를 구족하셨도다.
금생에 이 묘법을 받아 지닌 사람은 마치 돌을 주고 금덩어리 바꾼 것과 같은 것이라.
삶이 아무리 힘들고 고달플지라도 이 묘법을 놓치지 않는다면 성공한 삶이 되리라.
백 년을 금으로 된 좌대에 앉아 부귀영화를 누린다 해도 이 몸을 버릴 때 아무 소용이
없으나 법화경을 한 게송 한 구절을 받아 지닌 공덕으로 생사의 강을 건너게 되리라.
삼일수심천재보(三日修心千載寶)
백년탐물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
삼일동안 닦은 마음은 천 년의 보배요
백년동안 탐낸 재물은 하루 아침의 티끌이니라.
법화경은 모든 중생을 고통에서 건져내고 생사의 강을 건너게 되고 마침내 불도에 들게 되느니라.
범부(凡夫)는 눈이 보는 색상(色相)에 몸과 마음을 팔고 성인은 자심(自心)을 챙기느니라.
범부는 색상에 끄달려 이 몸의 시종(侍從)이 되어 평생 몸의 심부름꾼이 되어 따르지만
성인은 이 몸을 법기(法器)로 활용함이니라.
이 몸을 잘 다스리면 부처가 머무는 거룩한 도량이 되고 잘못다스리면 마군이
살고 있는 소굴이 되리라.
색상(色相)에 마음을 팔지마라. 이 몸을 버릴 때 후회해도 때는 늦으리라.
묘법(妙法)의 실상문(實相門)에 들면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라
묘법연화경의 실상문에 들면 찰나에 여래지에 들게 됨이라.
법화경만이 돈증보리(頓證菩提) 직지도량(直至道場)이니라.
법화행자는 오로지 묘법연화경에 귀명례(歸命禮)하라.
“나무묘법연화경” 제목을 놓치지 마라. 무일불성불(無一不成佛)이라 성불 못함이 하나도 없으리라.
중도실상(中道實相) 구원실성(久遠實成)의 본각여래(本覺如來)의 성제지어(誠諦之語)를
불립문자(不立文字)라 하여 신용하지 않는다면 출가 사문이 머리 둘 곳이 없으리라.
사십여년(四十餘年) 미현진실(未顯眞實)의 방편법에 집착하고 여래의 무상도(無上道)인
법화경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어찌 자부(慈父)의 자식이라 하리오.
이 법을 받아 지닌 자 진실한 불자이니라.
세존의 금언(金言)을 배신하지 마라.
오로지 묘법연화경에 귀명례(歸命禮)하라.
“나무묘법연화경” 부를 때가 본래시불(本來是佛)을 회복하는 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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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