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시 (十如是)
제법(諸法)에 갖추어져 있는 10종의 존재의 방식.
제법을 10의 측면에서 관찰 하여, 십여 십여경(十如 十如境)이라고도
한다.
천태(天台)가 세운 일념삼천(一念三千)의 교의(敎義)의 의처(依處)가
된 철리(哲理)이다.
여시(如是)는 [그와 같도다] 라고 읽으며,
이것은 [있는 그대로 본 사물(事物), 사상(事象)의 모습] 이라고 하는 것으로, 중도실상(中道實相)을 의미한다.
법화경 방편품제2에
소위제법(所謂諸法)의 여시상, 여시성, 여시체, 여시력, 여시작, 여시인, 여시연, 여시과, 여시보, 여시본말 구경등이니라] 라고 밝히고 있다.
이 십여시는 제법실상을 밝히고, 약개삼현일(略開三顯日)을 설한 것이라고 하여 십여실상(十如實相) 이라고도 한다.
간략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여시상(如是相) : 모양, 행동, 등의 표면에 나타난 형태
2. 여시성(如是性) : 성질, 성분등을 나타낸다
3. 여시체(如是體) : 근본, 즉 본체(本體)를 나타낸다.
4. 여시력(如是力) : 안에 숨겨진 힘, 잠재적 능력을 말한다.
5. 여시작(如是作) : 힘이 명백하게 밖으로 나타나는 작용을 말한다.
6. 여시인(如是因) : 결과를 초래하는 직접적인 원인을 말한다.
7. 여시연(如是緣) : 인을 돕는 즉, 원인을 이루는 근본동기를 돕는
보조적인 원인
8. 여시과(如是果) : 근본동기에서 발생한 결과
9. 여시보(如是報) : 결과가 형태로서 나타 난 것
10. 여시본말 구경등(如是本末 究竟等) : 본(本)여시상과 말(末)여시보,란
구극적(究極的)으로 동등하다는 것이다.
상,성,체(相性體)의 3如是는 제법의 본체를 나타내고,
력,작,인,연,과,보(力作因緣果報)의 6如是는 그 기능면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상(相)에서 보(報)에 이르는 9如是는 일관하여 통합성, 상즉불리(相卽不離)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10종의 방식으로 존재하고 발생하면서, 본체와 기능(작용) 등이 서로 불이(不二), 일체(一體)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십여시가 의미하는 중요한
뜻이며, 10종의 존재, 작용이 자체, 본체로서 하나하나의 사물에 들어있는 것은 아니다.
법화현의(法華玄義) 2권상에서는, 이 십여시를 공가중(空假中)의 삼제(三諦)에 입각해서 3가지의 독송방법(讀誦方法)을 하고 있는데, 이것을 삼전독송(三傳讀誦)이라고 한다. 더욱이 법화경의 범문원전(梵文原典)에는 십여시가 없고, 구마라습(鳩摩羅什)이 역경(譯經)에 임할 때, 대지도론권삼십이의구(大智度論卷三十二의九), 종법설(種法說) 체,법,력,인,연,과,성,한애,개통방편(體,法,力,因,緣,果,性,限礙,開通方便)에 의해서 전개 한 것으로 되어있다.
妙法蓮華經方便品第二
爾時世尊 從三昧 安詳而起 告舍利弗
諸佛智慧 甚深無量 其智慧門 難解難入
一切聲聞 辟支佛 所不能知 所以者何
佛曾親近 百千萬億 無數諸佛 盡行諸佛
無量道法勇猛精進 名稱普聞 成就甚深
未曾有法 隨宜所說 意趣難解 舍利弗
吾從成佛已來 種種因緣 種種譬喻
廣演言教 無數方便 引導眾生 令離諸著
所以者何 如來方便 知見波羅蜜 皆已具足
舍利弗 如來知見 廣大深遠 無量無礙
力無所畏 禪定 解脫三昧 深入無際
成就一切 未曾有法 舍利弗 如來能
種種分別 巧說諸法 言辭柔軟 悅可眾心
舍利弗 取要言之 無量無邊 未曾有法
佛悉成就 止舍利弗 不須復說 所以者何
佛所成就 第一希有 難解之法
唯佛與佛 乃能究盡 諸法實相 所謂諸法
如是相,如是性,如是體,如是力,如是作,
如是因,如是緣,如是果,如是報,
如是本末究竟等
일념삼천(一念三千)이란,
일념삼천(一念三千)이란 천태대사(天台大師)께서 내세운 교리인데 한 생각(一念) 가운데 삼천제법(三千諸法)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한 순간적인 마음에 우주만유가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 일념삼천설인데, 범부의 순간적인 한 생각이 삼천제법을 갖추고 있다는 교리다. 이 법계는 십법계(十法界)로 나누고 있다. 범부계 육도(六道)와 성인사계(聖人四界)가 있으니,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天)은 범부 육계이며 성문, 연각, 보살, 불(佛)은 성인 사계입니다. 범부 육계는 미계(迷界)이니 미혹의 세계이며, 성인 사계는 깨달음이 있는 오계(悟界)다. 온갖 존재하는 것은 십법계(十法界)를 벗어날 수 없으므로 이 십법계 하나 하나가 제각기 십법계를 갖추고 있으니, 백법계가 되니, 이를 십계호구(十界互具)라 이르고 있다. 방편품에서 설하신 위에서 설명한 십여시(十如是)를 백법계가 각각 갖추고 있으니 천여시(千如是)가 된다. 천여시는 삼세간(중생세간 국토세간 오음세간)에 갖추고 있어 삼천(三千)이 되니, 이를 일념삼천(一念三千)이라 한다. 제법(諸法)이라 함은 십법계(十法界)를 써서 해석함이요, 법이 비록 무량하다 해도 십법계를 벗어나지 못하며 하나하나 세계 중에서 비록 많은 갈래가 있다 해도 십여시(十如是)를 벗어나지 못한다. 지옥계는 지옥계대로 상성(相性)과 본말(本末)을 갖추고 있고.축생계는 축생계대도 상성과 본말을 갖추고 있어서 결여됨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하나 세계의 법계마다 십법계와 십여시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십법계가 각각 십법계를 갖추고 있으니, 백법계가 되며 백법계가 각각 십여시를 갖추고 있으니, 천여시가 되며 어떤 세계이든 중생세간(心) 국토세간(환경) 오음세간(정신과 물질)의 삼세간(三世間)이 됨으로 삼천이 되는 것이다. 삼천으로 표현되는 온갖 모든 세계는 우리의 일상적인 일념에 포함된다해서 일념삼천(一念三千)이라 한다. 즉 우리들의 평소의 한 생각 속에는 언제나 삼천으로 표현된 온갖 존재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차별적인 삼천제법(三千諸法)이 한 생각 속에 원융무애하게 구족되어 있으므로 일념삼천을 깨달으면 구경의 진리를 개닫게 되는 것이다. 여래는 두루 이해하심이 종횡으로 모두 미치지 않음이 없으시니 마치 손바닥의 과일을 보는 것과 같고 범부는 두 눈이 소경과 같고 이승(二乘)은 애꾸눈과 같고 보살은 밤에 사물을 보는 것과 같아 분명치 않기 때문에 그들을 위하여 설할 수 없으시니, "그만두어라" 하시고 절언탄(絶言歎)을 쓰셨다고 법화문구에서 밝히고 있다. 개개인의 길흉화복(吉凶禍福)과 국가의 흥망성쇠(興亡成衰)와 인류세계의 정예고락(淨穢苦樂)과 사성육범(四聖六凡) 등 우주만상(宇宙萬象)은 한 생각(一念)의 그림자요 작용인 것이니, 이 도리를 일념삼천(一念三千)이라 한다. 따라서 한 생각은 우주만유의 핵(核)이며 본체이며 비록 형상은 없으나,지수화풍공식(地水火風空識)의 육대(六大)가 다 그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세상에 있다는 모든 것이 한 생각의 작용이란 뜻이다. 일념삼천의 경전의 가장 바른 문증(文證)은 두 가지가 있으니, 방편품에 제법실상(諸法實相)의 뜻을 밝히신 십여시(十如是)와 욕령중생(欲令衆生) 개불지견(開佛知見)의 사불지견(四佛知見)이며, 이는 범부의 이구일념삼천(理具一念三天)의 도리다. 여래수량품에서 연 아실 (然 我實) 성불이래(成佛已來) 무량무변(無量無邊) 백천만억(百千萬億) 나유타겁(那由他劫)이는 석가세존께서 구원실성(久遠實成) 당초 증득하신 사증일념삼천(事證一念三千)이다. 중생의 이구일념삼천이란 이치상으로는 범부 중생들의 일념 가운데 불계(佛界)를 함장하고 있다해도 아직 증득하여 드러내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모든 범부가 일념삼천의 도리를 내포하고 있으나 아직 깨달아 알지 못함을 말한다. 사증일념삼천이란 부처님 세존께서 구원겁(久遠劫) 전에 이미 깨달아 증득하심이 사실적이란 말씀이다. 이러한 진리를 묘법연화경에서 밝히신 것이다. 중생의 본래부터 구족하고 있는 이구일념삼천(理具一念三千)의 한 생각과 제불(諸佛)의 사증일념삼천(事證一念三千)이 합하여 하나가 된 불종자(佛種子)를 가리켜 본구무작삼신불(本具無作三身佛)이라 하니, 짓지 아니해도 본래부터 삼신불(法, 報, 化)을 구족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들의 구박(具縛) 범부가 홀연히 교주(敎主)이신 석가세존의 모든 공덕을 물려받은 것이 된다. 왜냐하면 나무묘법연화경 제목은 부처님의 모든 공덕이 하나도 빠짐없이 함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사증일념삼천의 도리가 제목속에 녹아 있는 것이다. 만유의 현상은 천차만별하지만 실상(實相)은 일여평등(一如平等)한 것이며 일여평등의 진여(眞如)는 한 생각을 여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생각 그대로 십법계(十法界)요 또한 백법계(百法界)인 것이다. 삼천제법은 법 자체가 본래 그렇게 존재하여 서로 갖추고 서로 원융(圓融)하여 일(一)과 다(多)가 걸림이 없는 것이니, 이를 본구무작삼신불(本具無作三身佛)이라 한다. 일승묘법(一乘妙法)이 다 나의 마음에 갖추어져 있으니, 한 생각(一念) 속에 삼천제법을 구족한 까닭이요 또한 마음과 부처와 중생을 묘법연화경이 다, 평상심 속에 삼라만상(森羅萬象) 온갖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한 생각 속에 삼천제법(三千諸法)을 갖추고 있으니, 이를 곧 일념삼천설(一念三千說)이라 한다.
유시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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