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행자(法華行者

[법화경 법문법화행자(法華行者)  

 

법화행자란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법화경을 온 세상에 펴는 사람을 말합니다.

즉 법화경을 펼 때에는 모든 인간에게 다 법화경을 믿게 하겠다는 굳건한 마음으로 펴는 것을 법화행자라 합니다.

무릇 인간에게는 지혜있는 사람도 있고어리석은 사람도 있으며착한 사람도 있고악한 사람도 있으며근기가 좋은 사람도 있고근기가 나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어떤 중생이라도 수행 여하에 따라 부처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부언하면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펴는 사람도 역시 그러한 마음이라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착한 사람도 있고 악한 사람도 있는 것은 사실이지마는, 그러나 착한 사람이라도 완전무결한 사람이 없는 것과 같이,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끝까지 악한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악한 사람이라도 마음 속 깊이 착한 것을 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요컨대 지금까지 지나온 길이 다를 뿐입니다.  

타고난 환경이 다를 뿐입니다.

    

여러 가지 인연 관계로 해서 각각 차이가 생긴 것일 뿐, 어떤 사람이나 자기에 얽매이지 않는 마음, 곧 남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고 남의 괴로움을 함께 걱정하는 본성(本性)이라고 하는 *불성(佛性)은 다 갖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와 남과의 이해(利害)를 함께 해서, --기쁜 일은 함께 기뻐하고, 괴로운 일은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여 그 괴로움을 뚫고 나가고 싶다--하는 본성을 조금씩 키워나가면 언젠가는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라는 이상을 가지고 법화경을 펴는 사람을 법화행자라 합니다.

 

분명코 법화경을 믿는 공덕은 한량없이 큽니다.

 

*행천공심(行淺功深), 곧 법화경을 믿는 공덕이 크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법화경을 믿지않는 사람은 참으로 가엾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법화경을 믿지 않는 사람이 많고 믿는 사람은 극히 적습니다.

믿는 사람은 인연이 있어서 법화경을 믿게 된 것을 감사하게 여겨야 할 것이지마는 그렇다고 법화경을 믿지 않는 사람은 쓸모 없는 사람이라고 차별하고 그들을 멀리하거나 그들을 업신여기는 마음이 있으면 법화행자가 아닙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상불경보살품을 통해서 --지금 당장은 법화경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법화경을 믿을 본성은 가지고 있다, 지금 불교에 귀의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부처님의 가르치심에 귀의할 본성은 가지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나면서부터 이 거룩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

 

설혹 법화경을 배척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미워하지 말고, 그가 가지고 있는 그 거룩한 본성, 곧 불성을 존중하여 잘 가르쳐 인도해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목적은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하시는 데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다 부처님과 같은 경지에 이르도록 하겠다는 한량없이 큰 자비심을 가지고 계시므로, 가르치심을 펴고자 하는 사람은 그러한 부처님의 자비심을 닮아서 인간의 본성인 부처님이 될 거룩한 성질을 존중하고 모든 사람을 대해야 한다는 것이 이 상불경보살품의 근본 정신입니다.

삼인불성(三因佛性)

부처님께서는 불성에는 삼인(三因), 곧 정인(正因)요인(了因)연인(緣因)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정인불성(正因佛性) 모든 중생은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누구든지 나면서부터 부처님이 될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무릇 자식은 부모를 따르고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며 형제간에 서로 화목하고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면서부터 타고 났다하여 정인불성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정인불성의 인자(因子)는 인간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 있는 것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부언하면 본래부터 타고난 성질을 차차 키워가기만 하면, 마침내 부처님처럼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것을 전제하고,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경지까지 이를 수 있는 근본 원인이라 하여 정인불성이라 합니다.

 

요인불성(了因佛性) 누구나 정인불성(正因佛性)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으로 만족하고 수행을 하지 않아도 부처님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언하면 정인불성은 부처님이 될 성질을 갖춘 불종자(佛種子)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배워서 실천하는 수고로움을 쌓아가면 불성이 자라서 부처님이라는 완전한 생명의 열매를 맺는다 하여 요인불성이라 합니다.

부언하면 정인(正因)은 요인(了因)을 전제합니다.

즉 일체는 수행을 전제합니다.

 

법화경을 공부하는 사람은 요인을 짓기 위해서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법화경을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해설하고 옮겨 쓰는 보살수행으로 법화경 소식을 세상에 널리 전하는 것입니다.

 

무릇 세상 이치는 다 같습니다.

땅을 파고 씨앗을 뿌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물을 대주고 풀을 뽑아 주어야 하고, 거름을 주고 흙을 북돋아 주어야 꽃이 피고 열매를 맺지 않습니까.

연인불성(緣因佛性) 요인불성으로 일체중생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부처님의 거룩함을 알았으면, 다시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새로운 인연을 짓는 것을 연인불성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법화신앙을 생활에 접목(接木) 시켜서 실행하라는 것입니다.

 

장사를 하건농사를 짓건무슨 일을 하든지자비심을 가지고 모든 일을 통합해서 생각하여 처리하고 주위 사람들을 유익하게 한다 해서 연인불성이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인연에 의해 자기가 배운 것을 실제로 행동에 나타내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유익하게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부언하면, *삼인불성(三因佛性), 곧 요인(了因)과 연인(緣因)이 잘 갖추어져야만 비로소 우리가 타고난 정인불성(正因佛性)이 충분히 발휘되어 마침내는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법화경을 조금 안다고 하여 세상 사람을 속되다고 상대하지 않아도 안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수행보다는 세상에 나서서 무슨 일을 하겠다고 서두르는 것도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각(自覺)  

자각이란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화경의 정신을 깨달아 얻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경전상에서 허공(虛空)의 소리를 들었다는 것은 자기 마음속의 자각을 얻은 것, 곧 메시지를 뜻합니다.

부언하면 남을 구원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곧 자기자신을 완성하는 것으로서, 곧 본체상에서는 자기와 남과의 구별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자타일여사상(自他一如思想)을 말합니다.

대승(大乘)의 가르치심은 자기와 남이 하나가 되어, 수행을 쌓아서 자기가 훌륭하게 되면 저절로 남을 구원하게 되는 것이므로, 자기를 위하는 것이 곧 남을 위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분명코 남을 구원하기 위해 노력하면 쓸데없는 번뇌 따위가 자연히 사라지므로, 남을 위하는 것이 <너와 나><하나>라는 것을 터득하게 하는 자타일여(自他一如) 사상입니다.

본문에,-신통력이 이와 같아서 아승지겁에 항상 영축산과 다른 모든 곳에 있노라-고 하시는 말씀이, <깨닫는 것과 행하는 것>이 원만하게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는 부처님 경지입니다.

부언하면,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 그것이 남을 위하는 일이 되고, 또 남을 도와주는 일이 어느 사이에 자기를 위하는 일이 되어 자기와 남이 아주 원만하게 하나가 되는 각행원만(覺行圓滿)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일체중생구제를 전제한 부처님이라고 하는 청정 국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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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