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스님의 탈종과 조계종 각자도생

짜장스님의 탈종과 조계종 각자도생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짜장면을 보시해 일명 ‘짜장스님’으로 불리는 운천스님이 조계종 탈종을 선언해 충격을 주고 있다. 스님은 "왜 탈종하시느냐"는 물음에 말을 아끼는 모양새였지만, 짜장스님으로 불리며 전법과 포교에 나서는 동안 종단차원의 지원이 거의 없었음을 아쉬워해 그 이유를 짐작케 했다.


조계종은 대내외적으로 ‘수행 공동체’를 지향하지만 현실은 ‘각자도생’이다. 스님들이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전법과 포교 분야에서 빛을 발하는 스님과 단체를 적극 지원해야 하는 것이 곧 종단이 해야 할 주요 역할인데, 실상은 ‘방치’와 다름없다. 세상이 알아주는 특기와 장기를 종단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시큰둥하게 여긴다.


이 같은 종단을 바라보며 누군가는 과감히 탈종을 감행하지만 대다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종도를 자처한다. 기대고 바랄 곳 없는 현실은 평범한 이들에게 더욱 매서운 법. 스스로 살 길 찾아 나서는 일이 수행보다 시급한 스님들에게 탈종은 일견 배부른 소리일 수 있다.

날이 갈수록 심화되는 각자도생의 풍토는 수년째 지적되고 있는 ‘조계종 적폐’의 온상이기도 하다. 때마다 논란이 되는 금권선거 문제는 “이런 돈이라도 악착같이 받아야 한다”는 일부의 인식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있다. 스님들이 ‘일부 권승들의 은처자 문제’, ‘대다수가 요구하는 총무원장 직선제 무산’ 등의 현실을 목도하고도 공동체 변화를 위해 적극 나서지 않는 것은, 대의적 명분보다 하루하루 코앞의 삶이 시급함을 반증한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종단은 그 무엇 하나 품어내지 못하고 있다. 높은 지향과 괴리된 현실 사이에 모순만 대비된다. 4년 전 한국불교의 ‘마지막 선승’으로 추앙받는 송담스님의 탈종으로 불두(佛頭)를 잃어버린 조계종이, 포교분야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운천스님의 탈종으로 그나마 남아있던 팔다리마저 뒤엉키는 위기에 봉착한 것은 아닐는지….

과거 찬란했던 신라불교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지 오래지만, 제도권 밖에서 민중과 어울렸던 원효스님은 지금도 세간에 줄곧 회자된다. 권력과 결탁한 고려불교가 한 시절 화려했을지 모르나, 사람들의 뇌리에는 정혜결사를 주창한 보조스님의 결기가 보다 깊이 박혀있다. 일제강점기의 용성스님, 오늘날의 송담스님 모두 마찬가지일 테다. 이들은 모두 표현과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 승가가 승가답지 못할 때 자의반 타의반 탈승ㆍ탈종을 감행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조계종이 아니라 부처님의 제자라는 게 중요합니다.”


과연 후대에 역사는 조계종을 기억할 것인가, 아니면 전국 방방곳곳을 누비며 무료로 짜장면을 나눠주던 ‘짜장스님’을 기억할 것인가. 운천스님이 종단과 결별을 선언하며 남긴 한 마디가 씁쓸히 맴돈다.


기사출처 : 불교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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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