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을 사랑하는데 무슨 조건이나 자격 혹은 넘지 말아야 할 선과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그 여자를 사랑했고, 그 여자는 나와 함께 살면 평생 행복할 수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사랑했던 그 여자는 바로 내 동생의 아내였습니다.
내 이름은 불대(佛大), 동생의 이름은 승대(僧大)입니다. 일찍이 부모님이 부처님께 빌어서 나를 낳았고, 또 다시 삼보에 간절히 기도해서 동생을 얻었기에 그리 붙인 이름입니다. 부모님은 우리에게 언제나 바르게 행동하고, 악업을 두려워하며, 우애 좋게 지내도록 가르치셨습니다. 부모님 바람대로 우리 형제는 사이좋게 잘 자랐습니다.
동생 승대는 유달리 성품이 어질고 사랑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간곡한 가르침을 늘 마음에 새기고 그에 따르려고 노력했습니다. 틈만 나면 절에 찾아가서 스님들의 법문을 들었고, 온종일 부처님 가르침을 되새기며 깊은 생각에 잠기곤 했습니다. 욕심도 없었습니다. 부모님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주시면 동생은 늘 내게 양보했습니다. 그런 심성을 지녔기에 동생을 바라보는 부모님 눈길에는 더 깊은 애정이 담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은 세속의 인연을 다하여 우리 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내게 부탁하셨습니다.
“태어난 자는 죽게 마련이구나. 이렇게 세상은 덧없다. 덧없는 세상에서 계를 지닌다면 편안하게 살 것이요, 계를 어기면 일생이 불안하다. 너는 죽을 때까지 계를 잘 지켜라. 사람이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잘 가려서 지키고 살면 행복은 저절로 찾아온다. 네 동생은 오직 하나 뿐인 혈육이다. 잘 부탁한다.”
나는 그러겠노라고 굳게 약속을 하였습니다. 나의 다짐을 받자 아버지는 동생에게도 같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내 고요히 숨을 멈추었습니다. 언제나 따뜻하게 우리 형제의 언덕이 되어주신 부모님이 떠나가시자 세상이 텅 빈 것만 같았습니다. 우리 형제는 서로에게가 아니면 의지할 곳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동생은 말했습니다.
“형, 난 출가해서 수행자의 길을 걷고 싶어.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게 내 길인 것 같아.”
부모님을 잃은 충격이 컸나 봅니다. 그러니 뜬금없이 출가 이야기를 꺼내지요. 마음을 붙일 곳이 없어 지독하게 외로움을 탄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동생에게 짝을 찾아서 맺어주라고 내게 알려주었습니다. 아내를 맞으면 출가하겠다는 소리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이지요.
동생을 잘 보살피라는 부모님 유언도 있고 해서 나는 그날부터 동생 짝을 찾는데 혈안이 됐습니다. 집안도 좋고, 현명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아름답고 매력이 넘쳐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출가하겠다는 동생을 집에 주저앉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혼 적령기에 이른 여인이 있다는 집은 모조리 찾아다녔고, 그러다 마침내 마음에 딱 드는 여인을 발견해냈습니다. 그녀는 눈을 의심할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그녀의 집안은 어질기로 동네에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그토록 어진 집안에, 얼굴도 예뻤을 뿐만 아니라, 행동거지도 아름답고 다정했습니다. 동생의 배우자로 점찍었지만 내 마음이 크게 흔들린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굳게 마음을 다잡고 동생과의 혼인을 서둘렀습니다.
혼례식 날 곱게 단장한 그녀를 보고 친척들은 입을 모아 찬탄했습니다.
“저렇게 아름다운 아가씨가 세상에 있었구나. 사람이 아니라 하늘의 여신이라 해도 믿겠어.”
사람들은 너도나도 신부를 칭찬했지만 정작 동생은 심드렁했습니다. 그런 동생에게 내가 농담 삼아 이렇게 말을 건넸습니다.
“승대야, 넌 평소에 입버릇처럼 출가하겠다고 했지? 자, 어디 한 번 출가하려면 해봐라. 저렇게 아름다운 신부를 두고 집을 떠날 수 있는지 보겠다.”
그러자 동생은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답했습니다.
“형, 나 정말 출가해도 되겠어? 난 세속의 삶에 흥미가 없어. 오로지 이번 생을 수행에만 몰입하고 싶어. 정말 집을 떠나도 된다면 난 출가하겠어.”
“출가하고 싶으면 해라. 그렇게 원하니 어떻게 말리겠느냐.”
농담 삼아 던진 말에 동생은 떠나버렸습니다. 돌아온다는 기약도 없이 떠나고 만 것입니다.
설마 했습니다.
‘돌아오겠지…. 제 녀석이 별 수 있어? 신부화장이 마르기도 전에 저렇게 저버리고 떠나는 녀석이 세상에 어디 있어? 저렇게 예쁜 신부를 두고 수행이 제대로 되겠느냐 말야.’
나는 속으로 불안했지만 애써 태연하게 굴었습니다. 분명 돌아올 것이라 믿었습니다. 저렇게 매력 넘치는 여성을 어찌 품에 안지도 않고 떠난단 말입니까.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은 흘렀습니다.
나는 동생의 아내를 걱정했습니다. 혼인을 올리는 날 속절없이 떠나버린 남편 때문에 평생을 수절하며 지내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행여 그녀가 친정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말릴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녀에게 손가락질을 해댈 것이 분명합니다. 첫날밤도 치르지 않고 신랑에게 저버림을 당한 억울한 처지이지만 세상은 여인에게 가혹합니다.
그런데 그녀는 뜻밖에도 의연했습니다. 동생의 성품에 대해서는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었으며, 평소 세속의 삶보다는 수행자의 삶을 동경했다는 것까지도 그녀는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제수를 위로해주려고 찾아가면 오히려 그녀가 나를 위로해주었습니다. 몸가짐이 유달리 단정했던 그녀는 시부모를 대하듯 내게 지극하게 예를 갖추었습니다. 동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제수를 곁에서 지켜보는 사이 내 마음속에는 그녀를 향한 사랑이 커져갔습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이성이 나를 질타합니다. 하지만 ‘저렇게 아름다운 처녀를 어찌 품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라는 욕망이 늘 이겼습니다. 나는 어느 사이 밤낮으로 동생의 아내 곁을 맴도는 사랑의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혼자서만 속앓이를 했지만 그런 내 마음은 들키고 말았습니다.
“당신의 그 아름답고 젊은 시기를 그렇게 혼자 보내게 할 수 없소. 동생은 이미 떠나갔소. 내가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겠소.”
나는 값비싼 선물을 준비해서 그녀의 환심을 사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아주버님, 저는 당신 동생의 아내입니다. 아우의 아내는 딸 뻘이며, 남편의 형은 아버지와 같은 존재라는 성현들의 가르침도 있지 않습니까. 이러지 마십시오. 내 마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무시했습니다. 언젠가는 마음을 열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쉬지 않고 그녀의 방 앞에서 사랑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그녀가 이런 말까지 했습니다.
“제 얼굴이 그리도 예쁘다고 하시는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누구나 똑같은 뼈와 피와 살점과 해골일 뿐입니다. 제 몸도 그와 같습니다. 제발 환상을 버려 주시기 바랍니다.”
도저히 그녀의 마음을 차지할 수 없자 나는 결국 극약 처방을 쓰기로 했습니다.
남편이 떠나버린 뒤 홀로 남은 동생 아내의 방 앞을 매일 찾아갔습니다. 문을 두드려도 열리지 않자 이렇게 간절하게 노래했습니다.
아름다운 울금이 들판에 났네.
때가 되어도 아무도 캐지 않으니
아, 어쩌나. 저러다 그냥 시들까 두렵네.
넝쿨 우거지니 빛깔은 더욱 곱기만 하여라.
그대여, 나와 즐기지 않으려오.
아무리 고와도 늙어지면 덧없으리니.
그대가 처음부터 맘에 들었소.
행여 당신 오지 않을까 맘 졸였소.
이제야 그대 빛나는 얼굴을 대하게 됐으니
즐겁기 그지없어라.
사랑하지 못하고 어찌 흘려보내리.
나는 그대 저버리고 떠나지 않으리니
아름다운 그대여,
의심하지도 머뭇거리지도 말고
내 마음을 받아주오.
그러나 내 사랑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나의 스승님은 높고도 높으신 분.
그 분을 따르는 사문들도 맑고 깨끗합니다.
진리를 찬탄하면 성자가 되고
음욕에 휘말리면 짐승과 다르지 않지요.
나는 계율을 지키는 몸,
다른 이를 남편으로 맞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세상에는 예의와 차례가 있으니
남편의 형님은 아버지와 다름없고
동생의 아내는 딸이나 마찬가지.
나는 계율을 굳게 지키며 살겠습니다.
성인처럼 참다운 길을 걸어갈 것이요,
음욕의 덫에 빠지지 않겠습니다.
제발 그런 말씀을 거두어주십시오.
아주버님.
아무리 간절하게 사랑의 세레나데를 불러도 동생의 아내는 요지부동입니다. 심지어 그녀는 ‘아주버님이 간절히 탐하는 여자의 몸이란 것이 결국은 덧없고 흠 있고 냄새나는 것에 지나지 않다’는 말을 하면서 욕망을 살피라고 내게 일러주기까지 했습니다. 나는 결국 수를 쓰기로 했습니다.
‘방법은 오직 하나다. 떠나간 남편 생각에 이렇게도 매정하게 나를 거부하고 있으니 네 남편만 제거하면 정신을 차리겠지.’
나는 은밀하게 불량배들을 매수하였습니다. 수행자가 된 동생을 찾아내서 살해한 뒤에 그 시신을 보여주면 그녀는 포기하겠지요. 출가한 남편이라면 환속의 여지라도 있겠지만 죽은 자에게 무슨 바람을 품겠습니까.
형제끼리 의좋게 지내라는 아버지 유언 같은 것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내 마음속에는 오직 그녀만이 자리하였고, 그녀의 환심만 살 수 있다면 무슨 짓인들 하지 못하겠습니까. 동생? 수행자?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나는 지옥에 떨어져도 상관없었습니다.
며칠 뒤 불량배들은 동생의 머리와 소지품 몇 가지를 가져왔습니다. 불량배들은 동생의 마지막 모습을 들려주었습니다. 애욕에 휘말려 바른 길을 보지 못하는 삶이 얼마나 위험하고 덧없는가에 대해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은 뒤에 홀로 숲에서 수행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흉기를 들고 찾아갔을 때 동생은 제발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애원했고, 재물이 탐나서 사문인 자신을 찾아왔다면 속가 형님 댁에 편지를 써 줄 테니 그곳에서 받아 가라고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계속 목을 내놓으라고 위협하자 동생은 가만히 바닥에 앉아서 참선에 들었고, 멀리 떨어진 스승을 부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스승님, 아직 도를 얻지 못한 제게 이런 파국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그러자 동생의 스승은 이런 가르침을 일러주었다고 합니다.
“음욕에 휘말린 끝이 이렇게 무섭구나. 그대는 이제 피할 수 없는 지경에 처했구나. 하지만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저 부처님만을 떠올려라. 언제나 덧없음을 말씀하신 부처님을 생각해라. 성하면 언젠가는 쇠하고,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며, 영화로움은 끝내 무너지고 만다 하셨으니, 인간의 몸 또한 그와 같음을 생각하여라.”
동생은 스승의 가르침대로 깊이 선정에 들었다고 합니다. 물론 자신의 목을 길게 늘이고서 말입니다.
이렇게 해서 불량배들은 참선에 든 동생의 목을 쳐서 내게 가져온 것입니다. 저들이 동생의 마지막 모습을 자세하게 들려주었지만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어서 동생의 아내에게 이 일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나는 방 안에 사람 몸뚱이 형상을 만들고 그 위에 동생의 머리를 얹어놓았습니다. 얼핏 보면 사람이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말이지요. 그런 뒤에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동생이 돌아왔으니 식사라도 가져다주시오.”
그리고 나서 나는 초조하게 기다렸습니다. 눈물범벅이 된 채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내게 몸을 던질 그녀를 말이지요.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그녀는 내 방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기다리다 못해 그녀의 방으로 찾아갔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목이 잘린 동생의 시신 위로 그녀가 피를 토한 채 처참하게 쓰러져 있었습니다. 남편의 귀향이 반가워서 음식을 장만해서 들어갔다가 처참하게 살해당한 모습을 보고 충격을 견디다 못해 그리된 것입니다.
나는 숨이 끊어진 그녀 앞에 허물어지듯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토록 아름답던 여인이 이리 싸늘하고 처참한 시신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내가 원한 여인은 따뜻한 피가 돌고 생기가 넘쳐나 바라보기만 해도 내게 한없는 욕정을 불러일으키던 젊은 여인이었습니다. 대체 그 생기와 젊음과 아름다움은 어디로 사라졌습니까? 그토록 나를 취하게 만들던 그 매력이 어찌 이리도 허무하게 꺼져버릴 수 있습니까?
나는 그제야 내가 혈육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를 깨달았습니다. 부랴부랴 불량배들을 찾아서 혹시 동생이 무슨 말을 남기지는 않았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들은 내게 동생의 유언이 담긴 편지를 건네주었습니다.
두려움에 가득 차 천천히 편지를 열었습니다. 동생은 자기를 죽이러 찾아온 불량배들 앞에서 지상의 마지막 숨을 토해내며 내게 글을 남겼습니다.
“형님, 그간 편안하셨습니까? 부모님께서 저를 형님께 맡기셨거늘 어찌하여 그 부탁을 어기십니까. 욕정에 눈이 멀어 저를 이렇게까지 내몰아야 좋으시겠습니까? 부모님의 인자한 가르침을 어겼으니 불효를 저지르셨고, 이제 저를 죽이니 불인(不仁)마저 저지르시게 되었습니다. 사소한 곤충을 죽여도 그 죄가 무겁거늘 세속을 떠나 수행하는 동생의 목숨을 빼앗으려 하시니 그 죄를 어찌 갚으시겠습니까. 이제 저는 고요하게 눈을 감겠습니다. 언제나 형님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으니 부디 노력하고 또 노력하여 아름다운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동생의 편지는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내가 제정신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내 사랑은 미쳤습니다. 내 미친 사랑은 지상에 오직 하나뿐인 내 아우와 그 아내의 처참한 최후를 불러왔고 나를 영원히 고통으로 몰아갈 것입니다.
사랑은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지켜줘야 할 사랑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그녀를 사랑했습니다. 젊고 아름답고 어질고 똑똑한 여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까지 품어줘야 했습니다. 그녀가 품은 사랑을 지켜주는 것까지 사랑했어야 했습니다. 그러지 못한 내 마음, 그녀를 향한 내 마음은 사랑이 아니라 욕정에 불과했음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런데 너무 늦게 알아차렸습니다. 천륜과 인륜을 저버린 자의 무섭고도 무거운 과보와 영원히 씻을 수 없는 회한만이 내게 남았습니다.
* 음욕이 얼마나 위험하고 허망한 것인지를 절절하게 그린 두 형제 이야기는 『불대승대경(佛大僧大經)』에서 가져왔습니다.
유시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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