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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금관가야 중심권역에서 새로운 형태의 집모양토기와 말발걸이 출토

금관가야 왕궁지 추정 김해 봉황동 유적(사적 제2호)에서 발견


 금관가야 왕궁지 추정 김해 봉황동 유적(사적 제2호)에서 발견 -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소장 김삼기)에서 2015년부터 발굴조사 중인 금관가야 추정왕궁지인 김해 봉황동 유적(사적 제2호)에서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새로운 형태의 집모양토기(家形土器)와 말발걸이(鐙子)가 출토되었다.


집모양토기는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의 건물지 주변에서 발견되었다. 이 토기는 평면 반원형의 벽체를 가진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정면에는 네모꼴의 출입구가 설치되어 있다. 출입구는 여닫이문이 열려 있는 형태로, 출입구 아래에는 받침대가 놓여 있으며, 벽체의 한쪽 면에는 원형의 봉창(환기창)을 설치하였다. 지붕 모양은 앞부분과 뒷부분이 다른데, 앞은 박공을 가진 맞배지붕이고 뒤로 갈수록 경사져 내려가며 둥근 형태를 이룬다.
  * 박공(牔栱): 맞배지붕의 측면에 삿갓형으로 붙인 건축 부재
  * 맞배지붕: 건물 앞뒤에서만 지붕면이 보이고 추녀가 없으며 용마루와 내림마루만으로 구성된 지붕(책을 엎어놓은 형태)


지금까지 국내에 알려진 삼국 시대 집모양토기 대부분은 고상식(高床式, 기둥 위에 집을 만듦)의 맞배지붕 구조이다. 반면, 이번에 김해 봉황동 유적에서 출토된 집모양토기는 벽체를 가진 지면식(地面式) 구조이며, 지붕모양도 앞부분은 삿갓(∧)형, 뒷부분은 원형인 특이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처음 확인된 사례로 가야의 생활사와 건축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참고로, 『삼국지』동이전에서는 삼한의 가옥을 ‘......거처는 초가집과 흙방으로 짓는데, 모양이 무덤과 같으며, 그 문이 위에 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번에 출토된 집모양토기는 이 문헌사료와 유사하여 고대 가옥의 구조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김해 봉황동 유적의 소성(燒成)유구(불을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는 시설) 주변에서는 철로 만든 말발걸이가 출토되었다. 이 유물은 지금까지 발견된 적 없는 새로운 방식으로 제작된 것으로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의 CR(Computed Radiography) 장비로 촬영한 결과, 말발걸이 고리부분(輪部)에서 접합부가 발견되었다.
* CR(Computed Radiography): 기존의 X-ray 필름 방사선 사진을 디지털 방식으로 대체한 것으로 촬영 결과를 보다 선명하고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음


일반적으로 삼국 시대 말발걸이는 발을 거는 고리부분에 접합부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출토된 말발걸이는 고리를 둥근 형태로 연결하고, 연결부분에 각각 구멍을 뚫어 철심을 박는 ‘리벳(rivet)접합’ 방식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것은 국내에서 처음 확인된 말발걸이 제작방식으로, 마구 제작기술과 제작방식 변천 과정을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2015년부터 김해 봉황동 유적 추정왕궁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금관가야 중심권역의 경관을 복원하고, 사회, 경제 전반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를 축적해 가고 있다. 앞으로도 이러한 자료의 공유와 심화 연구를 통해 가야사를 복원하고, 관련 연구를 활성화하는 기반을 마련해 나갈 것이다.


<김해 봉황동 유적에서 나온 토기>



오늘의 우리 불교와 일본불교는 많은 측면에서 차이가 난다
오늘의 우리 불교와 일본불교는 많은 측면에서 차이가 난다. 그 결정적인 분기점이 된 것은 가마쿠라 시대(지금 도쿄의 서남부에 있는 해안지역 가마쿠라(鎌倉)에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 賴朝)가 군사적 지배기구인 막부를 세웠던 1192년부터 호조 다카토키(北條高時)가 멸망하기까지의 약 150년간을 말한다)에 새롭게 등장한 불교, 이른바 가마쿠라 신불교에 의해서이다. 그 이전의 남도(南都, 나라)불교나 헤이안(平安, 794년 이후부터 가마쿠라 이전까지)시대에 이루어진 불교가 아직은 중국이나 우리나라와 깊은 관련을 가지면서 보편적인 불교 속의 하나로 자리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가마쿠라 시대에 이루어진 신불교는 일본적인 특수성이 본격적으로 강화된 일본불교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가마쿠라 신불교가 오늘의 일본불교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두 가지 측면만을 살펴보기로 하자. 일본만의 특수성 강화…主流로 떠오르다 호넨, 종합불교 탈피해 수행 쉬운 염불 선택 다른 佛法 배제해 兼修 차단…종파불교 필연 가마쿠라 시대의 일본불교는 기라성 같은 고승들을 배출했는데, 그 시대의 서막을 연 사람은 단연 정토종의 개조 호넨(法然, 1133~1212)스님이다. 스

어제 1월8일의 KBS방송의 200억 경북궁 부실시공
1월 8일 KBS의 「‘200억 경복궁 복원에 시멘트...주먹구구 ’부실 시공‘」 보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 드립니다. □ ‘경복궁 흥복전 권역 복원’ 미장공사에 백시멘트를 사용한 부분은 즉시 철거하고 전통재료를 사용하여 재시공하였습니다. ㅇ 문화재 복원과 수리공사는 ‘문화재수리 표준품셈’에 규정된 재료를 사용하도록 되어 있으며, 백시멘트는 기와 처마 끝에 설치되는 와구토 바르기와 합각벽 설치, 벽체 줄눈바름 등 외기(外氣)에 노출되는 장소에 사용토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 와구토: 막새를 쓰지 않는 기와지붕 처마 끝에 마구리를 하얗게 발라주는 것 * 합각벽(合閣壁): 팔작지붕 측면에 생기는 삼각형의 벽 ㅇ 작년 3월 경복궁 흥복전의 벽체와 지붕 용마루 미장공사에 참여했던 기능인으로부터 규정되지 않은 재료인 백시멘트가 사용되었다는 민원이 접수되어, 감리원과 함께 공사현장을 확인한 결과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이에 백시멘트가 사용된 벽체와 용마루를 즉시 철거하고 6월까지 전통재료를 사용하여 전면 재시공하였습니다. * 용마루: 기와지붕의 가장 높은 곳(종도리 위)에 도리방향으로 길게 만들어 마감한 지붕마루 ㅇ 재시공 후에도 제보자는 백시멘트가 완전히 제


금관가야 중심권역에서 새로운 형태의 집모양토기와 말발걸이 출토

금관가야 왕궁지 추정 김해 봉황동 유적(사적 제2호)에서 발견 -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소장 김삼기)에서 2015년부터 발굴조사 중인 금관가야 추정왕궁지인 김해 봉황동 유적(사적 제2호)에서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새로운 형태의 집모양토기(家形土器)와 말발걸이(鐙子)가 출토되었다. 집모양토기는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의 건물지 주변에서 발견되었다. 이 토기는 평면 반원형의 벽체를 가진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정면에는 네모꼴의 출입구가 설치되어 있다. 출입구는 여닫이문이 열려 있는 형태로, 출입구 아래에는 받침대가 놓여 있으며, 벽체의 한쪽 면에는 원형의 봉창(환기창)을 설치하였다. 지붕 모양은 앞부분과 뒷부분이 다른데, 앞은 박공을 가진 맞배지붕이고 뒤로 갈수록 경사져 내려가며 둥근 형태를 이룬다. * 박공(牔栱): 맞배지붕의 측면에 삿갓형으로 붙인 건축 부재 * 맞배지붕: 건물 앞뒤에서만 지붕면이 보이고 추녀가 없으며 용마루와 내림마루만으로 구성된 지붕(책을 엎어놓은 형태) 지금까지 국내에 알려진 삼국 시대 집모양토기 대부분은 고상식(高床式, 기둥 위에 집을 만듦)의 맞배지붕 구조이다. 반면, 이번에 김해 봉황동 유적에서 출토된 집모양토기는 벽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