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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답사

의성을 대표하는 천년고찰 고운사(孤雲寺)

명찰로 유명한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등도 포함하고 있다.고운사는 서기681년(신문왕1년)에 해동 화엄종의 시조 의상(義湘)이 창건하여 고운사(高雲寺)라 하였는데, 그 후 최치원(崔致遠)이 승려 여지(如智), 여사(如事)와 함께 가운루(駕雲樓)와 우화루(羽化樓)를 건립하고, 이를 기념하여 최치원의 자(字)를 따서 고운사(孤雲寺)로 이름을 바꾸었다

의성을 대표하는 천년고찰 고운사(孤雲寺)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구계리 등운산(騰雲山)에 있는 고운사(孤雲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로 의성, 안동, 영주, 봉화의 4개 시·군의 60여개의 말사를 관장하고 있는데, 이 중에는 명찰로 유명한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등도 포함하고 있다.고운사는 서기681(신문왕1)에 해동 화엄종의 시조 의상(義湘)이 창건하여 고운사(高雲寺)라 하였는데, 그 후 최치원(崔致遠)이 승려 여지(如智), 여사(如事)와 함께 가운루(駕雲樓)와 우화루(羽化樓)를 건립하고, 이를 기념하여 최치원의 자()를 따서 고운사(孤雲寺)로 이름을 바꾸었다.


고려 태조 왕건의 스승이자 풍수지리사상의 시조로 받들어지는 도선국사가 가람을 크게 일으켜 세웠으며 그 당시 사찰의 규모가 五法堂十房舍(5동의 법당과 10개의 요사채)였다고 한다. 현존하는 약사전의 부처님(보물 제246)과 나한전 앞의 삼층석탑(경북 문화재자료 제28)은 도선국사께서 조성하신 것들이다.

948(정종 3) 운주(雲住)가 중창하였고 1018(현종 9)에는 천우가 대웅전·약사전·극락전·적묵당·설선당 등을 중창하였으며, 1695(숙종 21)에 중수하였고 1835(헌종 1) 화재로 소실되자 만송·호암·수열 등의 큰스님들이 함께 재건하여 근대까지 재건과 중수가 계속 되어온 사찰이다

"연꽃이 반쯤 핀 형국" 이라는 "부용반개형상"의 천하명당에 위치하여, 구름을 오르는 등운(騰雲)산에, 외로이 떠있는 구름 고운(孤雲) 같은 절이라 해서 얻은 이름으로, 근자에는 사찰음식으로도 더욱 많이 알려진 곳으로 경북 의성의 천년고찰 고운사(孤雲寺).

사찰이 시작된다는 경계임을 알려주는 일주문(一柱門)은 절에 들어서는 산문(山門) 중 첫 번째의 문으로 재가와 "출가가 둘이 아니며 시간과 공간도 둘이 아니요,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니라"는 의미로, 누구든지 이 일주문에 들어오면 이 진리를 깨닫고 잃었던 본 바탕을 되찾으라는 뜻이다.

 

신라 말 학자인 최치원(崔致遠)이 여지(如智), 여사(如事) 두 대사(大師)와 함께 세운 누각인 가운루(駕雲樓)가 있다.

옛날에는 이 누각 아래로 계곡물이 많이 흘러내려서 계곡에 잠기는 부분에는 돌기둥을 놓고 그 위로는 나무기둥을 이어서 누각을 받쳤는데, 이제는 예전처럼 물이 흐르지 않아 본래의 진가는 발휘하지는 못하지만 건물자체의 정교한 아름다움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1호로 지정된 가운루(駕雲樓)에는, 1676(숙종 2)1717년의 중수기가 남아 있어 여러차례 고쳐지었음을 알 수 있으며, 고운사를 관통하는 개울 위로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있게 만들어진 가운루(駕雲樓), 땅의 높낮이에 따라 기둥의 길이를 달리해 지어진 건물로 가운루의 기둥 길이는 저마다 다른데, 물길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계곡 속 바위를 초석 삼아 거기에 맞춰 기둥을 세웠기 때문 이라는데, 3쌍의 긴 기둥이 계곡바닥에서 거대한 누를 떠받치고 있는 모양새로 만들어져 있는 특별한 건축 양식이다.

가운루(駕雲樓)는 건물의 전면과 양 측면은 판벽으로 구성되어있고, 전면 중앙 3칸에는 가운데 설주가 있는 쌍여닫이 판창문이  남측면에는 판문으로 된 출입문을 두었으며, 북측면의 동쪽 칸에 치우쳐서 누각을 오르내리는 계단이 나무로 짜여 있고 양여닫이 판문을 달아 누에 들게 하였다. 가운루(駕雲樓)는 전체적으로 보아 조선중기의 양식이 지배적이기는 하나, 각 부분의 세부형식이 각기 다른 시대의 수법을 보이고 있어 몇 차례의 중수과정을 짐작케 하고 있으나, 초익공계 건물에 귀기둥만 2익공으로 꾸민 점이나, 산지 가람에서 계류 위에 꾸민 누형식 등은 흔치 않은 건물이다.

 

전각의 중앙에는 통일 신라시대의 불상으로 추정되는 약사불 좌상(藥師佛坐像)이 모셔져 있어, 약사불은 결가부좌한 무릎 위에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하고 있으며 머리와 얼굴 부분이 손상되어 훼손이 상당히 심하다.

3칸으로 나누어져 있는 고불전(古佛殿)의 오른쪽은 닫혀있고, 왼쪽에는 돌로 된 석비가 아니라 보기 드문 쇠로 만든 철비가 있어, "현령 이용준 영세불망비(縣令 李 侯 容準 永卋不忘碑)"로 정확하게는 철비가 아니고 구리로 만든 동비라 하며, 1859(己未 哲宗10)에 세운 것으로 이곳 고운사와 인연이 있는 듯 한데  철비는 주로 17~18세기에 성행 했다고 한다.

 

"누가 감히 내눈을 피할수 있겠는가" 라는 안내문의 그림이 있어. 조선중기에 그려진 그림으로 호랑이 눈이 어딜가도 따라오는 특이한 기법으로 살아있는 "호랑이 벽화" .

   

 

백련암(白蓮庵) 뒷쪽에 용왕각(龍王閣)이 있어, 산사의 사찰에 용왕각이 자리해 있어 특이한데, 용왕각은 사찰 입구의 높은곳에 배치되어 있으며 전각 뒤에는 샘이 있어 이곳에 자리한듯 한데, 용왕각(龍王閣)은 산신각(山神閣)과 마찬가지로 불법 수호신인 용왕을 모신 전각으로 용왕전, 용왕당 이라고 하는곳 도 있으며, 용왕신앙은 인도의 고대 사신신앙(蛇神信仰)에서 유래되어 불교에 수용된후 불법을 수호하는 신으로, 삼면이 바다이고 섬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옛날부터 용왕신앙이 발달해 왔다.

    

극락전(極樂殿)1695년 도청(道淸)과 선조(禪照)가 극락전에 아미타불과 대세지보살을 봉안하여, 이전의 관음상과 함께 삼존 불상을 모신곳으로 정면 3, 측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골기와로 맞배지붕으로 이었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8호로 지정된 "고운사 삼층석탑(孤雲寺 三層石塔)"이있어, 도선국사가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삼층석탑으로 2층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렸으며, 아래층 기단에는 희미한 안상(眼象) 무늬가 보이고, 위층 기단에는 기둥 모양이 조각되어 있으며, 탑신은 1층 몸돌에 비해 2층부터 급격히 줄어들고 있으며, 각 층의 몸돌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하였다.

약한 경사가 흐르는 지붕돌은 네 귀퉁이에서 치켜 올림이 크지 않고  밑면에 1층은 4, 2·3층은 3단의 받침을 각각 두었으며, 꼭대기에는 노반(露盤: 머리장식받침돌) 복발(覆鉢: 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 뒤집혀진 앙화(仰花: 활짝 핀 연꽃모양 장식) 등을 올린, 머리장식을 하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석재가 많이 닳아 있고  아래층 기단이 특히 심하며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줄어든 규모나 지붕돌의 조각양식 등 에서 시대가 조금 내려간 모습들이 보이고 있어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으로 추측 된다.

 

삼층석탑 위에는나한전(羅漢殿)이 자리하고 있어,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의 건물로 본래 고운사의 대웅전이었으나, 현재의 대웅전이 조성되면서 이곳으로 옮겨 나한전으로 쓰고 있다고 한다. 나한전(羅漢殿)에는 중앙에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고 좌,우로 16나한을 봉안 하였다

    

고운사는 해동제일지장도량이라 불리는 지장보살영험성지여서, 옛부터 죽어서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고운사에 다녀왔느냐"고 물어볼 정도였다고 하는데, 사세가 번창했을 당시에는 366간의 건물에 200여 대중이 상주했던 대 도량이 해방이후 쇄락하여 많은 사찰재산이 망실되고, 지금은 이십여명 대중이 상주하는 교구본사로는 작은 규모의 사찰로 전락 하였다가, 10여년전부터 중창불사의 뜨거운 원력으로 주변을 정리하고 건물들을 수리 및 단청하여, 지금은 위풍당당한 본산의 위상과 소박하고 절제된 수행지로서의 이미지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운사에는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 제470호로 지정된 연수전(延壽殿) 이라는 특별한 전각이 있어, "불교안의 또 다른 유교문화"를 살 필수 있는데 고운사 연수전은 1774(영조 20)에 영조가 내린 어첩(御帖)을 봉안하던 건물로, 일반 사찰에서는 볼 수없는 곳 이다.

 

약사전에는 보물 제246호인 "의성 고운사 석조여래좌상(義城 孤雲寺 石造如來坐像)"이 있어, 석조여래좌상은 불상 높이 79cm, 대좌 높이 72cm, 광배높이 134cm의 크기로 불신·광배·대좌가 모두 완전한 상태이며, 우견편단으로 법의를 입고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 석굴암 본존상 계통의 상으로, 보주형(寶舟形)의 광배는 그 안에 이조선(二條線)으로 두광과 신광을 표현하고 얕은 부조로 매우 화려하게 장식했으며, 둥근 형태의 두광과 신광 안에는 보상당초무늬가 장식되어 있고  바깥의 주변에는 불꽃무늬가 자연스러운 선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는 석조비로자나불좌상(石造毘盧舍那佛坐像)의 광배와 매우 흡사하다고 하며, 불신과 옷주름 표현의 경직성과 도식화 경향으로 미루어 9세기 정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한 항마촉지인 불좌상 중에서는 비교적 우수한 불상이다.

   

약사전 건너편 윗쪽에는 삼성각과 명부전이 자리해 있어, 산신(山神칠성(七星독성(獨聖)을 함께 봉안하고 있는 전각인 삼성각(三聖閣)이며, 죽은 사람이 간다는 저승의 유명계(幽冥界)를 상징하는 사찰 당우인명부전(冥府殿)으로, 염라10왕이 모신곳으로 영험 있는 기도처로 알려져 있다.


은자의 상징으로 불리는 고운 최치원의 "증산승(贈山僧)"이란 시에서

스님이여, 청산이 좋다고 말하지 마오 산이 좋다면서 무슨 일로 산을 떠나시는지 훗날 나의 종적 살펴 보시길 한번 청산에 들면 다시는 나오지 않을지니

증산승(贈山僧)은 입산시(入山詩)라고 불리는데, 이 시에서 말한대로 최치원은 52세이후 종적을 감췄고, 삼국사기 최치원전에는 가야산 해인사에 숨어 자유로운 생활로 일생을 마치며 전설에는 신선이 되었다고도 한다.

유시문 기자


오늘의 우리 불교와 일본불교는 많은 측면에서 차이가 난다
오늘의 우리 불교와 일본불교는 많은 측면에서 차이가 난다. 그 결정적인 분기점이 된 것은 가마쿠라 시대(지금 도쿄의 서남부에 있는 해안지역 가마쿠라(鎌倉)에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 賴朝)가 군사적 지배기구인 막부를 세웠던 1192년부터 호조 다카토키(北條高時)가 멸망하기까지의 약 150년간을 말한다)에 새롭게 등장한 불교, 이른바 가마쿠라 신불교에 의해서이다. 그 이전의 남도(南都, 나라)불교나 헤이안(平安, 794년 이후부터 가마쿠라 이전까지)시대에 이루어진 불교가 아직은 중국이나 우리나라와 깊은 관련을 가지면서 보편적인 불교 속의 하나로 자리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가마쿠라 시대에 이루어진 신불교는 일본적인 특수성이 본격적으로 강화된 일본불교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가마쿠라 신불교가 오늘의 일본불교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두 가지 측면만을 살펴보기로 하자. 일본만의 특수성 강화…主流로 떠오르다 호넨, 종합불교 탈피해 수행 쉬운 염불 선택 다른 佛法 배제해 兼修 차단…종파불교 필연 가마쿠라 시대의 일본불교는 기라성 같은 고승들을 배출했는데, 그 시대의 서막을 연 사람은 단연 정토종의 개조 호넨(法然, 1133~1212)스님이다. 스

오늘의 우리 불교와 일본불교는 많은 측면에서 차이가 난다
오늘의 우리 불교와 일본불교는 많은 측면에서 차이가 난다. 그 결정적인 분기점이 된 것은 가마쿠라 시대(지금 도쿄의 서남부에 있는 해안지역 가마쿠라(鎌倉)에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 賴朝)가 군사적 지배기구인 막부를 세웠던 1192년부터 호조 다카토키(北條高時)가 멸망하기까지의 약 150년간을 말한다)에 새롭게 등장한 불교, 이른바 가마쿠라 신불교에 의해서이다. 그 이전의 남도(南都, 나라)불교나 헤이안(平安, 794년 이후부터 가마쿠라 이전까지)시대에 이루어진 불교가 아직은 중국이나 우리나라와 깊은 관련을 가지면서 보편적인 불교 속의 하나로 자리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가마쿠라 시대에 이루어진 신불교는 일본적인 특수성이 본격적으로 강화된 일본불교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가마쿠라 신불교가 오늘의 일본불교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두 가지 측면만을 살펴보기로 하자. 일본만의 특수성 강화…主流로 떠오르다 호넨, 종합불교 탈피해 수행 쉬운 염불 선택 다른 佛法 배제해 兼修 차단…종파불교 필연 가마쿠라 시대의 일본불교는 기라성 같은 고승들을 배출했는데, 그 시대의 서막을 연 사람은 단연 정토종의 개조 호넨(法然, 1133~1212)스님이다. 스


일본 귀신마을 부산 아미동 비석마을

일본귀신마을로 불리우던 비석마을 산복도로변의 아미동 비석마을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의 공동묘지 위에 들어선 마을이다. 지금도 일본인 공동묘지의 비석 등이 계단, 담장의 부재로 사용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덕분에 도시괴담 등을 모아놓는 사이트에 관련 괴담이 자주 보인다.아미동 비석마을은 부산의 역사를 좀더 단적으로 보여주는 동네다. 이 곳 역시 일본인들이 공동묘지를 남겨두고 떠난 후 5년간 비어 있다가, 한국 전쟁 때 피난 온 사람들이 꽉 차있는 시가지를 피해 마을을 꾸렸던 것이다.비석마을의 골목을 따라 거닐다 보면 각진 모양의 상석이나 비석들은 가파른 계단의 디딤돌로 쓰이거나 옹벽 또는 집의 주춧돌 등으로 활용되었다. 토성역을 나오면 탐방로 안내판이 보이고 고갯마루에 마을지도가 있다. 골목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고, 비석을 사용한 건축물 앞에는 안내판도 있다.아미동 비석마을의 진수를 맛보려면 숨은 그림을 찾듯 비석의 자취를 찾아내는 게 흥미롭다. 감천문화마을처럼 개방성을 지닌 마을이 아니다. 삶의 골목을 거니는 게 부담스럽다면 주민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인 아미문화학습관이나 기찻집 예술체험장 등을 방문하길 권한다.아미문화학습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