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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답사

고대왕국 조문국의 유적 국보제77호 의성 탑리오층석탑

분황사모전석탑(국보제30호) 다음으로 유명한 탑이 의성군 금성면 탑리에 있다. 탑이 있는 마을이라고 마을이름이 탑리다.의성탑리오층석탑은 1962년 12월20일에 국보로 지정된 통일신라 초기의 돌을 벽돌모양으로 쌓은 모전석탑이다.

고대왕국 조문국의 유적 국보제77호 의성 탑리오층석탑

 

분황사모전석탑(국보제30다음으로 유명한 탑이 의성군 금성면 탑리에  있다. 탑이 있는 마을이라고 마을이름이 탑리다.의성탑리오층석탑은 19621220일에 국보로 지정된 통일신라 초기의 돌을 벽돌모양으로 쌓은 모전석탑이다. 전탑과 목탑의 형식이 결합된 이 탑은 높이 9.6m이며, 기단 폭은 4.5m이다, 재료는 화강암이다.

화강석으로 낮은 1단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부를 구성한 이 석탑은 특히, 1층 탑신에 목조 건물의 수법을 따라 배흘림이 있는 네모기둥을 세우고 남면에 감실을 두었으며 기둥위에는 주두의 형태를 본떠 조각하였다. 지붕돌의 낙수 면이 6단의 각층을 이룬 점은 전탑 형식 기둥이 배흘림을 이루고 기둥 위에 주두가 얹혀 있는 점은 목탑 형식의 특징이다.

 

각층 옥개석은 전탑의 구조를 본떠서 아래 윗면을 모두 층급형으로 단을 지어 조성하였으며, 맨 윗부분에 장식되었던 상륜부는 노반만 남아있다. 장중한 아름다움과 함께 전탑의 양식을 따르면서 일부 목조 건물의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이 탑은 경주 분황사 석탑에 다음 가는 오래된 석탑으로 한국 석탑양식의 발전을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과거에 이곳에 금성면 사무소가 있었는데 지금은 이전했으며 석탑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탑리 여자중학교가 있다.금성면 탑리에는 의성군의 명산 금성산이 동쪽에서 내려다보고 있으며 

은 분지에는 고대왕국 조문국이 존재했었다.금성산 고분군에는 지금도 많은 유물들이 발굴되고 있으며 조문국 박물관이

옛 조문 국민학교 자리에  있다.신라로서는 이곳이 동북방향으로 진출하는 중요한 길의 중간 지점이며 고구려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중요한 군사 경제적 요충지였기에 벌휴이사금 때

(삼한시대 사로국 때) 주변의 소국 중 비교적 이른 시기에 병합하였다.신라에 병합된 이후로도 상당한 기간 동안 소국으로서의 지위는 누린 것으로 보인다.금성산 중턱에는 당시의 병마 훈련소와 석성이 일부 남아 있다.

탑이 있는 잔디밭 한켠에 탑의 부재가 일부 전시되어 있다.

유시문 기자

 


중도본부 상임대표 김종문
해방돼지 오늘은 돼지해를 맞아 돼지와 관련된 옛 이야기를 하나 하고자 한다. 요즘 대한민국에 힘좀 쓴다는 자들은 동포들을 개돼지라 비하 하곤 한다. 분통이 터질 일이나 솔직히 현재 대부분의 동포들은 헬조선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에 수용되어 자본주의의 노예로 비참하게 사육되는 신세다. 우리가 지금처럼 비참한 것은 어째서인가? 대한민국은 전세계 석기시대 유적인 고인돌을 절반이나 보유하고 있는 나라로 전국이 선사유적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선사유적지들만 관광자원화 해도 먹고 살수 있는 여건이다. 그럼에도 위대한 유적지들은 대부분 정부가 주도하는 발굴이라는 합법적인 과정을 거쳐 파괴되는 참담한 현실이다. 대표적인 예가 대한민국 최대의 선사시대 도시유적으로 밝혀진 중도유적지다. 전세계가 부러워하는 중도유적지에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가 추진했던 매국적인 레고랜드 사업은 문재인정부에 의해 취소되어 마땅했으나 이상하게도 불법을 묵인하면서까지 중도유적지를 영국왕실이 실소유한 멀린사에 100년간이나 무상임대 했다. 참담하다. 정부가 국민을 보호하지도 국익을 추구하지도 않으니 어쩌란 말인가.. 어떤 이들은 이제 중도를 영국왕실에 완전히 빼앗겼으니 단념하라고도 한다. 그

고대왕국 조문국의 유적 국보제77호 의성 탑리오층석탑
고대왕국 조문국의 유적 국보제77호 의성 탑리오층석탑 분황사모전석탑(국보제30호)다음으로 유명한 탑이의성군 금성면 탑리에 있다. 탑이 있는 마을이라고 마을이름이 탑리다.의성탑리오층석탑은1962년 12월20일에국보로 지정된 통일신라 초기의돌을 벽돌모양으로 쌓은 모전석탑이다. 전탑과 목탑의형식이 결합된이 탑은 높이 9.6m이며, 기단 폭은 4.5m이다, 재료는 화강암이다. 화강석으로 낮은 1단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부를 구성한 이 석탑은 특히, 제1층 탑신에 목조 건물의 수법을 따라 배흘림이 있는 네모기둥을 세우고 남면에 감실을 두었으며 기둥위에는 주두의 형태를 본떠 조각하였다. 지붕돌의 낙수 면이6단의 각층을 이룬 점은 전탑 형식기둥이배흘림을 이루고 기둥 위에 주두가얹혀 있는 점은 목탑 형식의 특징이다. 각층 옥개석은 전탑의 구조를 본떠서 아래 윗면을 모두 층급형으로 단을 지어 조성하였으며, 맨 윗부분에 장식되었던 상륜부는 노반만 남아있다. 장중한 아름다움과 함께 전탑의 양식을 따르면서 일부 목조 건물의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이 탑은 경주 분황사 석탑에 다음 가는 오래된 석탑으로 한국 석탑양식의 발전을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과거에 이곳에금성


일본 귀신마을 부산 아미동 비석마을

일본귀신마을로 불리우던 비석마을 산복도로변의 아미동 비석마을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의 공동묘지 위에 들어선 마을이다. 지금도 일본인 공동묘지의 비석 등이 계단, 담장의 부재로 사용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덕분에 도시괴담 등을 모아놓는 사이트에 관련 괴담이 자주 보인다.아미동 비석마을은 부산의 역사를 좀더 단적으로 보여주는 동네다. 이 곳 역시 일본인들이 공동묘지를 남겨두고 떠난 후 5년간 비어 있다가, 한국 전쟁 때 피난 온 사람들이 꽉 차있는 시가지를 피해 마을을 꾸렸던 것이다.비석마을의 골목을 따라 거닐다 보면 각진 모양의 상석이나 비석들은 가파른 계단의 디딤돌로 쓰이거나 옹벽 또는 집의 주춧돌 등으로 활용되었다. 토성역을 나오면 탐방로 안내판이 보이고 고갯마루에 마을지도가 있다. 골목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고, 비석을 사용한 건축물 앞에는 안내판도 있다.아미동 비석마을의 진수를 맛보려면 숨은 그림을 찾듯 비석의 자취를 찾아내는 게 흥미롭다. 감천문화마을처럼 개방성을 지닌 마을이 아니다. 삶의 골목을 거니는 게 부담스럽다면 주민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인 아미문화학습관이나 기찻집 예술체험장 등을 방문하길 권한다.아미문화학습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