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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3m마다 깃대, 365일 태극기 휘날리는 섬마을

[3·1운동 100년]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 [1] '항일의 섬' 소안도
전남 완도에서 배 타고 한시간.. 배 이름도 '대한' '민국' '만세'

3m마다 깃대, 365일 태극기 휘날리는 섬마을


[3·1운동 100년]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 [1] '항일의 섬' 소안도
전남 완도에서 배 타고 한시간.. 배 이름도 '대한' '민국' '만세'

그 섬에서 3·1운동은 현재 진행형이다. 꼭 100년 전 봄, '독립(獨立) 만세(萬歲)'의 함성과 태극기의 물결이 한반도의 온 산하를 덮었듯 남도의 작은 섬 소안도에선 1년 365일 1500개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전남 완도군 소안도의 주민과 초등학생들이 3·1운동 100주년인 2019년을 맞아 소안항일운동기념탑 앞에서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고 있다. '항일의 섬'이라 불리는 소안도의 주민들은 1919년 서울에서 3·1운동이 일어난지 불과 14일만에 완도의 만세 운동을 주도했으며, 1920년대 섬 주민 6000여명 중 800명이 '불령선인'으로 찍혀 총독부의 감시를 받았을 정도로 격렬하게 항거했다. /김영근 기자

전남 완도 화흥포항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을 가야 닿는 곳. 이곳을 운항하는 세 척의 배 이름부터 '대한' '민국' '만세'호다. 선착장에 도착하는 순간 이곳을 왜 '태극기의 섬'이라 부르는지 실감하게 된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가에 3m 간격으로 세운 깃대마다 태극기가 펄럭인다. 학교와 관공서는 물론 집집마다 빠짐없이 태극기를 달았다. 소안초등학교 6학년 김유준(13)군은 "학교 선생님과 동네 어른들로부터 거의 매일 항일운동 이야기를 들어서 3·1운동이 일어난 100년 전이 그렇게 오래전 일 같지 않다"며 웃었다.

"한마디로 '항일(抗日)의 섬'이자 '민족의 섬'입니다." 이대욱(66) 소안항일운동기념사업회장이 말했다. 서울에서 3·1 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14일 만인 3월 15일 소안도의 독립운동가들이 치밀하게 거사를 준비해 완도읍 장날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완도군민과 천도교인·기독교인 등 1000여명이 동참했다. 소안도민들이 주도한 이 '3·15 만세운동'은 유관순의 천안 아우내 만세운동보다 보름이나 빨랐다. 소안도에선 해마다 3월 15일 만세운동 재현 행사를 연다.

2003년 복원된 사립소안학교 교사.

19세기 말부터 광복까지 오래도록 지속된 끈질긴 항쟁이었다. 이 회장은 "1920년대 소안도 주민 6000여명 중 800명이 총독부에 의해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지목돼 감시를 받았다"고 했다. 섬 주민 중 광복 후 건국훈장을 받은 사람은 20명, 기록에 남은 독립운동가만 89명이다.

함남 북청, 부산 동래와 함께 항일운동이 가장 강성했던 곳으로 꼽히는 소안도의 항쟁은 '항일의 종합판'과도 같았다. 평화적 시위와 무력 항쟁, 교육 운동과 노농(勞農) 운동, 비밀 결사와 법정 투쟁이 한곳에서 일어났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 접장 7명이 소안도에서 체포돼 그중 3명이 처형당했다. 1909년에는 의병이 주도한 '당사도 등대 습격 사건'이 소안도에서 발생했다.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는 "소안도를 비롯한 전남 남해안의 섬들은 동학운동의 전통으로 인해 항일운동의 뿌리가 깊은 곳"이라고 했다.

소안도 출신으로 서울 중앙학교를 졸업한 송내호(1895~1928) 등이 항쟁의 중심 역할을 맡았다. 완도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송내호는 1927년 좌우를 망라한 항일 민족운동 단체인 신간회의 창립 발기인 35인 중 한 명으로 조선일보 사장 이상재, 주필 안재홍 같은 민족 지도자들과 함께 활동한 인물이다.

1923년 개교한 사립소안학교는 '배움만이 항일의 길'이라는 소안도민의 의자가 표현된 교육 기관이었다. 학교 이름에 '사립'을 붙인 이유는 '일제가 아니라 우리 손으로 학교를 세웠다'는 의미다. 일장기를 달지 않고 일본 국경일 행사를 거부하던 이 학교는 1927년 강제 폐교됐고, 주민들은 격렬한 복교 운동을 벌였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연일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섬마을 학교의 폐교 사건은 항일운동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그들의 정신은 최근에 와서야 제대로 기억되기 시작했다. 2003년 사립소안학교 교사가 복원됐고, 그 옆에 소안항일운동기념관이 세워졌다. 2004년엔 기념탑이 건립됐다. 2013년에는 온 마을이 국기를 다는 '태극기 섬 선포식'이 열렸고 2017년엔 군(郡)에서 '소안도는 연중 태극기를 달 수 있다'는 조례를 만들었다. 학생 수 90명의 소안초등학교에선 해마다 3월이면 백일장 대회를 연다. 지난해 5학년 이은비 학생은 이런 시를 썼다. "마치 소안도에는/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커다랗고 커다란/ 애국심이 땅에 묻혀/ 나무도 새도 노래하는 듯하네."


기사출처 :

:조선일보 

소안도=유석재 기자 입력 2019.01.01. 03:09


중도본부 상임대표 김종문
해방돼지 오늘은 돼지해를 맞아 돼지와 관련된 옛 이야기를 하나 하고자 한다. 요즘 대한민국에 힘좀 쓴다는 자들은 동포들을 개돼지라 비하 하곤 한다. 분통이 터질 일이나 솔직히 현재 대부분의 동포들은 헬조선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에 수용되어 자본주의의 노예로 비참하게 사육되는 신세다. 우리가 지금처럼 비참한 것은 어째서인가? 대한민국은 전세계 석기시대 유적인 고인돌을 절반이나 보유하고 있는 나라로 전국이 선사유적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선사유적지들만 관광자원화 해도 먹고 살수 있는 여건이다. 그럼에도 위대한 유적지들은 대부분 정부가 주도하는 발굴이라는 합법적인 과정을 거쳐 파괴되는 참담한 현실이다. 대표적인 예가 대한민국 최대의 선사시대 도시유적으로 밝혀진 중도유적지다. 전세계가 부러워하는 중도유적지에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가 추진했던 매국적인 레고랜드 사업은 문재인정부에 의해 취소되어 마땅했으나 이상하게도 불법을 묵인하면서까지 중도유적지를 영국왕실이 실소유한 멀린사에 100년간이나 무상임대 했다. 참담하다. 정부가 국민을 보호하지도 국익을 추구하지도 않으니 어쩌란 말인가.. 어떤 이들은 이제 중도를 영국왕실에 완전히 빼앗겼으니 단념하라고도 한다. 그



일본 귀신마을 부산 아미동 비석마을

일본귀신마을로 불리우던 비석마을 산복도로변의 아미동 비석마을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의 공동묘지 위에 들어선 마을이다. 지금도 일본인 공동묘지의 비석 등이 계단, 담장의 부재로 사용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덕분에 도시괴담 등을 모아놓는 사이트에 관련 괴담이 자주 보인다.아미동 비석마을은 부산의 역사를 좀더 단적으로 보여주는 동네다. 이 곳 역시 일본인들이 공동묘지를 남겨두고 떠난 후 5년간 비어 있다가, 한국 전쟁 때 피난 온 사람들이 꽉 차있는 시가지를 피해 마을을 꾸렸던 것이다.비석마을의 골목을 따라 거닐다 보면 각진 모양의 상석이나 비석들은 가파른 계단의 디딤돌로 쓰이거나 옹벽 또는 집의 주춧돌 등으로 활용되었다. 토성역을 나오면 탐방로 안내판이 보이고 고갯마루에 마을지도가 있다. 골목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고, 비석을 사용한 건축물 앞에는 안내판도 있다.아미동 비석마을의 진수를 맛보려면 숨은 그림을 찾듯 비석의 자취를 찾아내는 게 흥미롭다. 감천문화마을처럼 개방성을 지닌 마을이 아니다. 삶의 골목을 거니는 게 부담스럽다면 주민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인 아미문화학습관이나 기찻집 예술체험장 등을 방문하길 권한다.아미문화학습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