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동두천 -9.4℃
  • 맑음강릉 -2.5℃
  • 맑음서울 -7.2℃
  • 맑음대전 -4.9℃
  • 맑음대구 -2.3℃
  • 맑음울산 -1.4℃
  • 흐림광주 -0.1℃
  • 맑음부산 -0.9℃
  • 흐림고창 -0.6℃
  • 흐림제주 4.9℃
  • 맑음강화 -9.6℃
  • 맑음보은 -5.3℃
  • 맑음금산 -4.9℃
  • 흐림강진군 1.3℃
  • 맑음경주시 -2.1℃
  • 맑음거제 0.5℃
기상청 제공

컬럼

중도본부 상임대표 김종문

해방돼지

해방돼지

오늘은 돼지해를 맞아 돼지와 관련된 옛 이야기를 하나 하고자 한다. 요즘 대한민국에 힘좀 쓴다는 자들은 동포들을 개돼지라 비하 하곤 한다. 분통이 터질 일이나 솔직히 현재 대부분의 동포들은 헬조선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에 수용되어 자본주의의 노예로 비참하게 사육되는 신세다.

우리가 지금처럼 비참한 것은 어째서인가? 대한민국은 전세계 석기시대 유적인 고인돌을 절반이나 보유하고 있는 나라로 전국이 선사유적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선사유적지들만 관광자원화 해도 먹고 살수 있는 여건이다. 그럼에도 위대한 유적지들은 대부분 정부가 주도하는 발굴이라는 합법적인 과정을 거쳐 파괴되는 참담한 현실이다. 대표적인 예가 대한민국 최대의 선사시대 도시유적으로 밝혀진 중도유적지다.

전세계가 부러워하는 중도유적지에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가 추진했던 매국적인 레고랜드 사업은 문재인정부에 의해 취소되어 마땅했으나 이상하게도 불법을 묵인하면서까지 중도유적지를 영국왕실이 실소유한 멀린사에 100년간이나 무상임대 했다. 참담하다. 정부가 국민을 보호하지도 국익을 추구하지도 않으니 어쩌란 말인가..

어떤 이들은 이제 중도를 영국왕실에 완전히 빼앗겼으니 단념하라고도 한다. 그러나 필자의 눈에 중도는 분명하게 살아있다.

나의 고향은 안산의 도리섬이라는 평범한 시골마을이었는데 어린시절 명절이면 장정들이 마을 중앙에 모여 돼지를 잡곤 했었다. 8살인 81년 추석에도 여느 때처럼 돼지를 잡았는데 그날은 평소보다 커다란 돼지가 트럭에 실려와 눕혀졌다. 당시만 해도 재미있는 구경꺼리가 적었던 시기로 동네가 떠나갈 듯 돼지가 소리를 질러대자 오래지 않아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모여들었다. 동네아이들도 태반이 모였는데 나도 그 자리에 섰다.

“애들은 이제 가라~” 돼지를 잡기 시작하면서 어른들은 잔인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인지 아이들을 쫓아냈고 아이들은 멀리 떨어져서 그 모습을 보았다. 나는 집이 마을 중앙에 위치했기에 집으로 들어가 작은방에 창문으로 그 모습을 가까이 관찰할 수 있었다.

나는 7살부터 생사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는데 너무 이른 시기였는지 어른들은 그저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이 전부였다. 사람은 왜 죽을까? 개들도 새들도 다 죽고 나도 죽게 될텐데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걸까? 그런 고민을 하던 시기였기에 어른들이 돼지를 잡는 모습은 그 자체가 명상이고 화두였다.

커다란 돼지는 발목이 묶여서 바닥에 눕혀졌는데 덩치가 커서인지 어른들이 애를 먹을 정도였다. 돼지가 죽자 사람들은 돼지를 해체하기 위해 묶었던 다리를 풀고 능숙하게 뜨거운 물을 부어가며 칼로 돼지의 털을 깎기 시작했는데 털을 다 깎고 해체를 하려는 시점에 기적이 일어났다.

갑자기 죽었던 돼지가 되살아난 것이다. 눈을 뜬 돼지는 꿈틀하고 몸을 크게 흔들더니 꾸에엑~ 하는 비명소리를 내면서 힘겹게 일어섰다. 그리곤 주위를 둘러보고 뒤쪽으로 몸을 틀어 비명을 내지르며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냅다 도망을 쳤다. 사람들은 얼이 빠진 듯 대부분 가만히 서 있었는데 돼지가 50m정도를 달려 코너를 돌아 사라지자 그제서야 야~ 잡어~ 소리치며 뒤를 쫓기 시작했다. 살벌한 도살현장이 갑자기 난장판으로 변했고 그 모습에 구경하던 사람들은 웃음을 못견뎌 배를 잡았다.

탈출한 돼지는 한참이 지나서야 죽은체로 십여명의 장정들에 의해 운반됐고 결국 해체되어 추석명절 꼬치신세가 됐다. 돼지가 죽었으니 돼지의 탈출은 무의미했을까? 돼지가 죽는 순간까지 억압에 저항하고 잠깐이나마 해방의 순간을 맞았으니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아마 돼지는 마을을 벗어나 들판을 달릴 때 삶에서 처음으로 자유를 느꼈을 것이다.

말 못하는 짐승인 돼지도 끝까지 저항하는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으로 어찌해야겠는가? 정신이 죽으면 육신은 시체일 뿐이다.

중도유적지는 거대한 돼지처럼 죽은 듯 보이지만 아직 숨결이 남아 있고 동포들이 조금만 더 저항 한다면 다시금 살아날 것이다. 중도유적이 일만년 한민족의 위대한 역사를 간직한체로 수천년 동안이나 숨겨져 있다 모습을 드러낸것은 수많은 선지자들이 예언한 인류의 정신과 문화를 이끌어가는 정신문명국 장손국가가 되라는 하늘의 천명이다.

동포들이여.. 중도는 억압 속에 죽임 당하는 한민족을 궁휼히 여기사 하나님과 조상님들이 내려주신 은혜인데 어찌 싸구려 플라스틱 레고랜드를 만들라며 영국왕실에 상납할 수 있는가? 우리가 어찌 조상의 무덤과 역사를 팔아 배를 채울 수 있는가?

춘천레고랜드는 천상에서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이루고자 지상에 내려온 천손민족인 한민족을 타락시켜 몰락하게 하려는 영미유대자본의 극악한 흉계임이 분명하니 전 동포가 결사반대하여 중단시켜야 마땅하다.

"부정하고 부패한 권력에 저항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자유다."

죽었던 돼지가 살아나듯 2019년 돼지해에 중도유적지를 되살리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자.

2019년 1월 1일 현충원에서
중도본부 상임대표 김종문 씀

중도본부 상임대표 김종문
해방돼지 오늘은 돼지해를 맞아 돼지와 관련된 옛 이야기를 하나 하고자 한다. 요즘 대한민국에 힘좀 쓴다는 자들은 동포들을 개돼지라 비하 하곤 한다. 분통이 터질 일이나 솔직히 현재 대부분의 동포들은 헬조선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에 수용되어 자본주의의 노예로 비참하게 사육되는 신세다. 우리가 지금처럼 비참한 것은 어째서인가? 대한민국은 전세계 석기시대 유적인 고인돌을 절반이나 보유하고 있는 나라로 전국이 선사유적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선사유적지들만 관광자원화 해도 먹고 살수 있는 여건이다. 그럼에도 위대한 유적지들은 대부분 정부가 주도하는 발굴이라는 합법적인 과정을 거쳐 파괴되는 참담한 현실이다. 대표적인 예가 대한민국 최대의 선사시대 도시유적으로 밝혀진 중도유적지다. 전세계가 부러워하는 중도유적지에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가 추진했던 매국적인 레고랜드 사업은 문재인정부에 의해 취소되어 마땅했으나 이상하게도 불법을 묵인하면서까지 중도유적지를 영국왕실이 실소유한 멀린사에 100년간이나 무상임대 했다. 참담하다. 정부가 국민을 보호하지도 국익을 추구하지도 않으니 어쩌란 말인가.. 어떤 이들은 이제 중도를 영국왕실에 완전히 빼앗겼으니 단념하라고도 한다. 그

중도본부 상임대표 김종문
해방돼지 오늘은 돼지해를 맞아 돼지와 관련된 옛 이야기를 하나 하고자 한다. 요즘 대한민국에 힘좀 쓴다는 자들은 동포들을 개돼지라 비하 하곤 한다. 분통이 터질 일이나 솔직히 현재 대부분의 동포들은 헬조선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에 수용되어 자본주의의 노예로 비참하게 사육되는 신세다. 우리가 지금처럼 비참한 것은 어째서인가? 대한민국은 전세계 석기시대 유적인 고인돌을 절반이나 보유하고 있는 나라로 전국이 선사유적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선사유적지들만 관광자원화 해도 먹고 살수 있는 여건이다. 그럼에도 위대한 유적지들은 대부분 정부가 주도하는 발굴이라는 합법적인 과정을 거쳐 파괴되는 참담한 현실이다. 대표적인 예가 대한민국 최대의 선사시대 도시유적으로 밝혀진 중도유적지다. 전세계가 부러워하는 중도유적지에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가 추진했던 매국적인 레고랜드 사업은 문재인정부에 의해 취소되어 마땅했으나 이상하게도 불법을 묵인하면서까지 중도유적지를 영국왕실이 실소유한 멀린사에 100년간이나 무상임대 했다. 참담하다. 정부가 국민을 보호하지도 국익을 추구하지도 않으니 어쩌란 말인가.. 어떤 이들은 이제 중도를 영국왕실에 완전히 빼앗겼으니 단념하라고도 한다. 그


일본 귀신마을 부산 아미동 비석마을

일본귀신마을로 불리우던 비석마을 산복도로변의 아미동 비석마을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의 공동묘지 위에 들어선 마을이다. 지금도 일본인 공동묘지의 비석 등이 계단, 담장의 부재로 사용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덕분에 도시괴담 등을 모아놓는 사이트에 관련 괴담이 자주 보인다.아미동 비석마을은 부산의 역사를 좀더 단적으로 보여주는 동네다. 이 곳 역시 일본인들이 공동묘지를 남겨두고 떠난 후 5년간 비어 있다가, 한국 전쟁 때 피난 온 사람들이 꽉 차있는 시가지를 피해 마을을 꾸렸던 것이다.비석마을의 골목을 따라 거닐다 보면 각진 모양의 상석이나 비석들은 가파른 계단의 디딤돌로 쓰이거나 옹벽 또는 집의 주춧돌 등으로 활용되었다. 토성역을 나오면 탐방로 안내판이 보이고 고갯마루에 마을지도가 있다. 골목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고, 비석을 사용한 건축물 앞에는 안내판도 있다.아미동 비석마을의 진수를 맛보려면 숨은 그림을 찾듯 비석의 자취를 찾아내는 게 흥미롭다. 감천문화마을처럼 개방성을 지닌 마을이 아니다. 삶의 골목을 거니는 게 부담스럽다면 주민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인 아미문화학습관이나 기찻집 예술체험장 등을 방문하길 권한다.아미문화학습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