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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있는 나무묘법연화경 비석

일본인 영령을 모시는 "나무묘법연화경"이 새겨진 비석이 있다.
일명 법화경비가 그것이다. 높이 120cm.지름40cm의 대리석으로 만든 원기둥형태의 100년된 비석이다.
탑신에는 나무묘법연화경이 새겨져있다.


부산 아미동 비석마을에 가면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이 이곳 대한불교 대성종 사찰인 대성사다.               

부산 서구에 있는 대성사는 북에서 남으로 뻗은 구덕산, 시약산, 아미산 연봉의 일부가 남으로 이어져 천마산. 장군산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 산령을 경계로 하여 사하구와 접하고 보수천을 경계로 중구와 접하고 있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고장, 역사의 숨결이 흐르고 문화예술이 살아있는 전형적인 지세를 갖추고 있는 이곳 아미동에 대성사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 사찰에 일본인 영령을 모시는  "나무묘법연화경"이 새겨진 비석이 있다.

일명 법화경비가 그것이다. 높이 120cm.지름40cm의 대리석으로 만든 원기둥형태의 100년된 비석이다.

탑신에는 나무묘법연화경이 새겨져있다.
南無妙法蓮華經(남무묘법연화경) /本山院妙田太福日功居士(본산원묘전태복일공거사)
事寂院妙光日常大姉(사적원묘광일상대자)/大正八秊七月三十日山田七太(郞)(대정8년7월30일 산전칠태(랑)
비석 뒷면에 새겨져 있는 글씨는 손으로 짚어가며 확인 하였으나 위에 적은 것이 맞으리라고 생각한다.

산전칠태까지만 새겨져 있는데 아래에 랑(郞)자가 빠진 것아닌가 생각이 되어 추가했다.

비석에 새겨진 글을 다음과 같이 해석해 보았다.
南無妙法蓮華經(なむみょうほうれんげきょう, 남묘호렌게쿄, 신도가 법화경에 귀의하는 뜻으로 외는 말) 1919년(대정8) 7월 30일 산전칠태(랑)이 부모로 생각되는 본산원묘전태복일공거사와 사적원묘광일상대자를 합장하고 세운 비로 추정된다. <인용> 

    

절의 일주문에서 경내로 들어와 왼쪽을 보면 오석에 글자를 새긴 높이 2.42M의 대성사 창건공덕비가 있다.

 


또 그옆에는 5층석탑처럼 생긴 탑이 하나 서 있다. 당시 묘지 주위에 흩어져 있던 돌들을 주워 모아서 탑을 만들었다고 주지스님이신 무애스님 말씀하셨다.  

앞에는 용두산 공원이 있으며 오륙도와 영도대교가 보이는 곳이다. 대성사는 부산광역시 서구 옥천로 141-22(아미동2가)에 자리잡고 있다. 공덕비와 5층탑을 지나면 왼쪽에 해수관세음보살님과 용왕대신을 모셔놓은 야외 용왕당이 있다. 지장전과 대웅전을 지나 종무소를 거쳐 절의 북쪽편 상단으로 올라가면 산신각과 독성각이 있다. 산신각을 내려와 오른쪽 언덕으로 내려가면 1천불을 모신 경사지 야외법당이 전개되고, 그 가운데 높이가 7미터나 되는 우뚝 선 미륵대불이 하얀 옷을 입으시고 2중의 네모 관을 쓴 채 근엄하게 서 계신다.


대성사에도 묘지석의 흔적이 고스란이 남아있었다.

 

글 사진 : 유시문 기자


해방70년 - 근대불교제종파
해방70년 - 근대불교제종파 사진 : 예천 회룡포 광복 70년의 한국불교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1천6백년의 한국불교사를 정립하면서 새로운 미래불교를 펼쳐가는전환점에 서있기 때문이다. 한국불교는 그동안 하향과 상향의 신앙형태를 모두 겪었다. 국가의 절대적인 지원아래 위에서 밑으로 전해지는 하향의 귀족불교와 처절할 정도의 박해를 받으면서 밑에서 위로 전개했던 민중불교를 다같이 경험했고 이제는 비호도 탄압도 없이 자신의 두 다리로 당당하게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그 기간이 광복 70년일 때 짧은 세월동안 많은 과거가 정리되었고 그 위에 앞으로의 역사를 이끌어갈 설계도가 그려지고 있다. 따라서 한국불교의 장래는 매우 밝다고 여겨진다. 특히 젊은 스님들의 수행열과 신도들의 높은 의식구조는 한국불교를 늘 깨어있게 만들 것이다. 이러한 한국불교의 중추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 종단일 때 과연 오늘의 각 종단들은 어떠한 모습으로 활동하고 있는지 그 현장을 찾아가 보기로 한다. 종단의 현황은 바로 한국불교의 현주소와 직결되는 까닭이다.종파불교라는 말은 한국불교의 한 특징처럼 되어 있다. 불교가 삼국에 전래된 후 많은 스님들이 입당하여 수학했고 돌아온 후 한

한국에 있는 나무묘법연화경 비석
부산 아미동 비석마을에 가면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이 이곳 대한불교 대성종 사찰인 대성사다. 부산 서구에 있는 대성사는 북에서 남으로 뻗은 구덕산, 시약산, 아미산 연봉의 일부가 남으로 이어져 천마산. 장군산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 산령을 경계로 하여 사하구와 접하고 보수천을 경계로 중구와 접하고 있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고장, 역사의 숨결이 흐르고 문화예술이 살아있는 전형적인 지세를 갖추고 있는 이곳 아미동에 대성사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 사찰에 일본인 영령을 모시는 "나무묘법연화경"이 새겨진 비석이 있다. 일명 법화경비가 그것이다. 높이 120cm.지름40cm의 대리석으로 만든 원기둥형태의 100년된 비석이다. 탑신에는 나무묘법연화경이 새겨져있다. 南無妙法蓮華經(남무묘법연화경) /本山院妙田太福日功居士(본산원묘전태복일공거사) 事寂院妙光日常大姉(사적원묘광일상대자)/大正八秊七月三十日山田七太(郞)(대정8년7월30일 산전칠태(랑) 비석 뒷면에 새겨져 있는 글씨는 손으로 짚어가며 확인 하였으나 위에 적은 것이 맞으리라고 생각한다. 산전칠태까지만 새겨져 있는데 아래에 랑(郞)자가 빠진 것아닌가 생각이 되어 추가했다. 비석에 새겨진 글을 다음과 같이 해석해 보았다.


일본 귀신마을 부산 아미동 비석마을

일본귀신마을로 불리우던 비석마을 산복도로변의 아미동 비석마을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의 공동묘지 위에 들어선 마을이다. 지금도 일본인 공동묘지의 비석 등이 계단, 담장의 부재로 사용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덕분에 도시괴담 등을 모아놓는 사이트에 관련 괴담이 자주 보인다.아미동 비석마을은 부산의 역사를 좀더 단적으로 보여주는 동네다. 이 곳 역시 일본인들이 공동묘지를 남겨두고 떠난 후 5년간 비어 있다가, 한국 전쟁 때 피난 온 사람들이 꽉 차있는 시가지를 피해 마을을 꾸렸던 것이다.비석마을의 골목을 따라 거닐다 보면 각진 모양의 상석이나 비석들은 가파른 계단의 디딤돌로 쓰이거나 옹벽 또는 집의 주춧돌 등으로 활용되었다. 토성역을 나오면 탐방로 안내판이 보이고 고갯마루에 마을지도가 있다. 골목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고, 비석을 사용한 건축물 앞에는 안내판도 있다.아미동 비석마을의 진수를 맛보려면 숨은 그림을 찾듯 비석의 자취를 찾아내는 게 흥미롭다. 감천문화마을처럼 개방성을 지닌 마을이 아니다. 삶의 골목을 거니는 게 부담스럽다면 주민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인 아미문화학습관이나 기찻집 예술체험장 등을 방문하길 권한다.아미문화학습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