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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일본 귀신마을 부산 아미동 비석마을

일본인 공동묘지위에 세워진 마을

일본귀신마을로 불리우던 비석마을 


    


산복도로변의 아미동 비석마을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의 공동묘지 위에 들어선 마을이다. 지금도 일본인 공동묘지의 비석 등이 계단, 담장의 부재로 사용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덕분에 도시괴담 등을 모아놓는 사이트에 관련 괴담이 자주 보인다.아미동 비석마을은 부산의 역사를 좀더 단적으로 보여주는 동네다. 이 곳 역시 일본인들이 공동묘지를 남겨두고 떠난 후 5년간 비어 있다가, 한국 전쟁 때 피난 온 사람들이 꽉 차있는 시가지를 피해 마을을 꾸렸던 것이다.비석마을의 골목을 따라 거닐다 보면 각진 모양의 상석이나 비석들은 가파른 계단의 디딤돌로 쓰이거나 옹벽 또는 집의 주춧돌 등으로 활용되었다.

 

토성역을 나오면 탐방로 안내판이 보이고 고갯마루에 마을지도가 있다. 골목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고, 비석을 사용한 건축물 앞에는 안내판도 있다.아미동 비석마을의 진수를 맛보려면 숨은 그림을 찾듯 비석의 자취를 찾아내는 게 흥미롭다. 감천문화마을처럼 개방성을 지닌 마을이 아니다. 삶의 골목을 거니는 게 부담스럽다면 주민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인 아미문화학습관이나 기찻집 예술체험장 등을 방문하길 권한다.아미문화학습관은 지하 1, 지상 3층 규모로 3층이 입구다. 야외 데크를 지나 카페로 이어지는데 자연스레 전망대 역할을 한다. 토성동과 보수동 등 부산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사진작가 최민식의 갤러리 등이 자리하고 감천문화마을도 지척이라 어울러 즐길 만하다.피란수도 부산야행 행사 시즌 때는 무료 셔틀버스가 임시수도기념관에서부터 비석문화마을까지 왕복 운행하며 서구청 소속 전문해설사가 가이드로 직접 해설을 해 주며 투어 체험을 해 볼수 있다. 더군다나 야행 행사인 만큼 낮이 아닌 밤에 비석문화마을을 체험해 볼 수 있는색다른 경험과 꼭대기에 위치한 전망대에 올라가서 야경을 바라보면 부민동과 아미동 일대랑 저 멀리 자갈치시장, 남포동, 영도 일대가 다 보인다.

 



 





 




당시에 이곳에 화장장이 있었으며,  부지는 9683, 건물은 1366홉의 철근 블록 단층집 건물로 제장(齊場) 정면에 신불(神佛) 양식(兩式)의 제단(齋壇)을 설치했다, 화장장은 무연무취 특허 일제 신식 화장로(無煙無臭 特許 日 新式 爐) 2기를 설비하여 1시간 내외에 완전소각이 가능하였다 한다. 1933(소화 8)의 화장장 이용횟수가 1,408회에 달하였다.

과거 화장장은 현재는 천주교아파트가 자리 잡고 있다. 천주교아파트는 부근에 사는 사람들은 대개 화장막 아파트로 알고 있었다. 아파트는 지은지 25년이 되어 낡았으며 3층 건물로 군데 군데 벗겨진 페인트가 볼썽사나웠다. 이곳이 예전에 아미동 화장장이 있던 곳이었다. 그 내력은 다음과 같다.

부산부에서는 부내에 흩어져 있는 사영(私營) 화장장(火葬場)인 영도·부산진·아미산·대신리의 화장설비가 불완전하여, 1929(소화 4) 1월 곡정(谷町) 2정목(지금의 아미동 천주교아파트 자리-아미동 2216-23, 1, 세대수30, 1985629일 준공, 연면적 821)에 부영(府營) 화장장을 신설하였다.

글 사진 : 유시문 기자  


해방70년 - 근대불교제종파
해방70년 - 근대불교제종파 사진 : 예천 회룡포 광복 70년의 한국불교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1천6백년의 한국불교사를 정립하면서 새로운 미래불교를 펼쳐가는전환점에 서있기 때문이다. 한국불교는 그동안 하향과 상향의 신앙형태를 모두 겪었다. 국가의 절대적인 지원아래 위에서 밑으로 전해지는 하향의 귀족불교와 처절할 정도의 박해를 받으면서 밑에서 위로 전개했던 민중불교를 다같이 경험했고 이제는 비호도 탄압도 없이 자신의 두 다리로 당당하게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그 기간이 광복 70년일 때 짧은 세월동안 많은 과거가 정리되었고 그 위에 앞으로의 역사를 이끌어갈 설계도가 그려지고 있다. 따라서 한국불교의 장래는 매우 밝다고 여겨진다. 특히 젊은 스님들의 수행열과 신도들의 높은 의식구조는 한국불교를 늘 깨어있게 만들 것이다. 이러한 한국불교의 중추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 종단일 때 과연 오늘의 각 종단들은 어떠한 모습으로 활동하고 있는지 그 현장을 찾아가 보기로 한다. 종단의 현황은 바로 한국불교의 현주소와 직결되는 까닭이다.종파불교라는 말은 한국불교의 한 특징처럼 되어 있다. 불교가 삼국에 전래된 후 많은 스님들이 입당하여 수학했고 돌아온 후 한

한국에 있는 나무묘법연화경 비석
부산 아미동 비석마을에 가면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이 이곳 대한불교 대성종 사찰인 대성사다. 부산 서구에 있는 대성사는 북에서 남으로 뻗은 구덕산, 시약산, 아미산 연봉의 일부가 남으로 이어져 천마산. 장군산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 산령을 경계로 하여 사하구와 접하고 보수천을 경계로 중구와 접하고 있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고장, 역사의 숨결이 흐르고 문화예술이 살아있는 전형적인 지세를 갖추고 있는 이곳 아미동에 대성사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 사찰에 일본인 영령을 모시는 "나무묘법연화경"이 새겨진 비석이 있다. 일명 법화경비가 그것이다. 높이 120cm.지름40cm의 대리석으로 만든 원기둥형태의 100년된 비석이다. 탑신에는 나무묘법연화경이 새겨져있다. 南無妙法蓮華經(남무묘법연화경) /本山院妙田太福日功居士(본산원묘전태복일공거사) 事寂院妙光日常大姉(사적원묘광일상대자)/大正八秊七月三十日山田七太(郞)(대정8년7월30일 산전칠태(랑) 비석 뒷면에 새겨져 있는 글씨는 손으로 짚어가며 확인 하였으나 위에 적은 것이 맞으리라고 생각한다. 산전칠태까지만 새겨져 있는데 아래에 랑(郞)자가 빠진 것아닌가 생각이 되어 추가했다. 비석에 새겨진 글을 다음과 같이 해석해 보았다.


일본 귀신마을 부산 아미동 비석마을

일본귀신마을로 불리우던 비석마을 산복도로변의 아미동 비석마을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의 공동묘지 위에 들어선 마을이다. 지금도 일본인 공동묘지의 비석 등이 계단, 담장의 부재로 사용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덕분에 도시괴담 등을 모아놓는 사이트에 관련 괴담이 자주 보인다.아미동 비석마을은 부산의 역사를 좀더 단적으로 보여주는 동네다. 이 곳 역시 일본인들이 공동묘지를 남겨두고 떠난 후 5년간 비어 있다가, 한국 전쟁 때 피난 온 사람들이 꽉 차있는 시가지를 피해 마을을 꾸렸던 것이다.비석마을의 골목을 따라 거닐다 보면 각진 모양의 상석이나 비석들은 가파른 계단의 디딤돌로 쓰이거나 옹벽 또는 집의 주춧돌 등으로 활용되었다. 토성역을 나오면 탐방로 안내판이 보이고 고갯마루에 마을지도가 있다. 골목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고, 비석을 사용한 건축물 앞에는 안내판도 있다.아미동 비석마을의 진수를 맛보려면 숨은 그림을 찾듯 비석의 자취를 찾아내는 게 흥미롭다. 감천문화마을처럼 개방성을 지닌 마을이 아니다. 삶의 골목을 거니는 게 부담스럽다면 주민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인 아미문화학습관이나 기찻집 예술체험장 등을 방문하길 권한다.아미문화학습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