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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이 서로 감사해야 할 것들 >

<한국과 일본이 서로 감사해야 할 것들 >

한국에나 일본에나 왜 서로 증오 해야 하는가에 대한 전문가들로 넘친다. 그러나 통일한국이 동북아신문명을 이루고, 세계지도국가로 부상하려면 일본과 하나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려면 서로가 존중하고 인정해 주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가 앞으로 후천개벽시대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좀 더 배포가 크고 너그럽고 아량이 있는 국민으로 성장해야 한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 감사해야 할 이유를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가 없지는 않다.

   <한국이 일본에 감사해야 할 것들>


1. 일본 열도가 한반도의 방파제가 되어 주기 때문에 태평양에서 어떤 쯔나미가 일어나더라도 한국은 안심할 수 있다. 2. 일본이 그 곳에 있기 때문에 고대로부터
여러 이유로 한국인들이 한반도에서 절망적인 상황에 몰렸을 때, 일본으로 가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 있었다.
3. 일본이 한국에 가까이 있기 때문에 한국전쟁 때 미군이 빨리 한국에 진출할 수 있어 부산 perimeter 를 확보할 수 있었다.
만일 3일만 늦었더라면 모든 것이 끝났을 것이다.
또한 일본은 전쟁 중 불침 항공모함으로서, 보급물자의 조달처로서, 지치고 다친 군인들의 치료와 휴식처로서 귀중한 역할을 했다.
4. 일본이 먼저 서구문명을 받아들이며 만들었던 학술용어 들과 번역서적, 기타 학문성과들은 한국이 빨리 발전하는데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5. 과거의 일본통치의 잘못을 사죄하려고 많은 양심적인 일본인들이 한국의 산업화를 도왔다. 특히 포항제철의 성공은 이러한 일본인들의 헌신적인 도움에 힘입은 바 크다.
6. 한국의 산업화의 과정에서 일본은 상품개발의 아이디어와 자본의 조달처로,
시장으로 큰 역할을 해주었다.
7. 일본의 경제대국으로서의 성공은 북한, 중공, 소련으로부터 한국이 포위되어 공산화되는 것을 막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일본이 한국에 감사해야 할 이유들>


1. 고대로부터 한국은 일본의 조상의 나라요, 문화의 공급처였고 한국으로부터 온 선진기술은 일본의 생활수준 향상에 큰 공헌을 했다.
2. 13세기의 몽고 침략 때 한국은 수십전에 걸친 항쟁에서도 항복하지 않아 일본이 충분히 방어할 시간적 여유를 주었고 이러한 항쟁은 일본침입 때 가미가제의 타이밍과 맞게 유도함으로서 일본을 구했다.
3. 임진왜란 때 일본이 조선에서 가져온 도자기 기술은 수백년간의 서양에의 도자기 수출로 이어졌고 이로 인해 쌓은 부는 일본이 성공적으로 근대화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4. 일본의 히라가나는 한국에서 이두에서 발전된 것이며 이러한 고유문자의 상용화는 일본의 화려하고 섬세한 문화를 발전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5. 신라의 화랑도가 일본의 무사도의 시원이며 이러한 무사도는 일본이 강국이 되는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한국 고대의 현묘지도인 풍류도가 일본에 건너가 신도가 되었으며 이 신도는 일본인들의 정신문화의 핵심이 되었다.
6. 한국 전쟁 때 한국인들의 애국심, 반공의지, 인내심, 투지력 등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함을 나타내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나라를 지켜내 결과적으로 일본을 공산세력의 마수로부터 지켜주고 일본의 번영을 보장해 주었다.
일본인들은 이에 대해 한국인들에게 깊이 감사해야 한다.
7. 전쟁 후에도 수없는 북한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엄청난 국방의 댓가를 치르면서도 경제적으로 성장해 공산위협으로부터 일본의 방파제 역할을 훌륭히 해주었다.
여기에 대해서도 일본은 한국에 깊은 고마움을 느껴야 한다.

앞으로 통일 이후 동북아신문명 시대를 맞이하여 한국과 일본은 서로 협력하여 후천개벽시대를 여는 차원 높은 새로운 문명을 청출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은 사이 좋은 이웃으로, 형제와 같이 지내고 부부와 같이 지내야 한다.
좀 더 아량을 크게 갖고 폭을 넓혀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가짐으로 새로운 미래를 합력하여 창출하여야 한다.


자료출처 : 세계평화유불선총연합 石 日澄


해방70년 - 근대불교제종파
해방70년 - 근대불교제종파 사진 : 예천 회룡포 광복 70년의 한국불교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1천6백년의 한국불교사를 정립하면서 새로운 미래불교를 펼쳐가는전환점에 서있기 때문이다. 한국불교는 그동안 하향과 상향의 신앙형태를 모두 겪었다. 국가의 절대적인 지원아래 위에서 밑으로 전해지는 하향의 귀족불교와 처절할 정도의 박해를 받으면서 밑에서 위로 전개했던 민중불교를 다같이 경험했고 이제는 비호도 탄압도 없이 자신의 두 다리로 당당하게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그 기간이 광복 70년일 때 짧은 세월동안 많은 과거가 정리되었고 그 위에 앞으로의 역사를 이끌어갈 설계도가 그려지고 있다. 따라서 한국불교의 장래는 매우 밝다고 여겨진다. 특히 젊은 스님들의 수행열과 신도들의 높은 의식구조는 한국불교를 늘 깨어있게 만들 것이다. 이러한 한국불교의 중추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 종단일 때 과연 오늘의 각 종단들은 어떠한 모습으로 활동하고 있는지 그 현장을 찾아가 보기로 한다. 종단의 현황은 바로 한국불교의 현주소와 직결되는 까닭이다.종파불교라는 말은 한국불교의 한 특징처럼 되어 있다. 불교가 삼국에 전래된 후 많은 스님들이 입당하여 수학했고 돌아온 후 한



한해를 시작하는 날의 뜻

一年(いちねん)の始(はじ)まりの日 한해를 시작하는 날 元日(がんじつ)、元旦(がんたん) 日本(にほん)では1948年(ねん)に「年(とし)のはじめを祝(いわ)う日(ひ)」として法律(ほうりつ)で国民(こくみん)の祝日(しゅくじつ)と制定(せいてい)されました。 「元日(がんじつ)」は1月(いちがつ)1日(ついたち)のこと、そして「元旦(がんたん)」というのは1月1日の朝(あさ)の事(こと)です。「元」という字(じ)には「一番(いちばん)初(はじ)め」という意味(いみ)があり「旦」という字(じ)には「朝(あさ)」「夜明け(よあけ)」という意味(いみ)があります。 古来(こらい)から行(おこな)われてきた元日(がんじつ)の風習(ふうしゅう)は、現在(げんざい)でも受(う)け継(つ)がれています。今(いま)でも私達(わたしたち)は歳神様(としがみさま)をお迎(むか)えするために門松(かどまつ)を門(もん)の前(まえ)に飾(かざ)ったり、鏡餅(かがみもち)を備(そな)えたり、前日(ぜんじつ)に準備(じゅんび)したおせち料理(りょうり)を食(た)べたりしています。また、子供(こども)は親(おや)や親戚(しんせき)からお年玉(としだま)をもらいます 일본에서는 1948년 '한해의 시작을 축하하는 날'로서 법으로 국민의 경축일(국경일)로 제정되었습니다. 간지쯔는 1월1일을